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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신앙/입도 수기

우주의 빛이 내 몸에 내려오다

by 가가운장 2023. 10. 16.

신 ○○/ 서울잠실도장

“숨은 산소가 아니라, 우주의 빛을 호흡하는 것입니다!” 저의 80년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는 신민식 원장님의 이 말 한마디에 몸속 고속도로가 새롭게 뻥 뚫렸습니다. 충맥호흡법 수행은 제게 와서 꽃이 되어 주었습니다.

우주의 빛을 호흡한다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나를 만나면 나를 죽이고”   
하나.  
“숨은 산소가 아니라, 우주의 빛을 호흡하는 것입니다!” 신민식 원장님의 이 말 한마디가 순간적으로 저에게 멍!을 때렸습니다. 고개를 돌려 창문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어지럽습니다. 저의 80년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는 딱! 이 단어 한마디에 몸속 고속도로가 새롭게 뻥! 뚫린 것입니다. 저를 세속의 진흙탕에서 연꽃으로 틔워 준 대오각성 명언입니다. ‘단순한 산소가 아니라 빛을 들이마신다!’ 어쩌면 당연한 이 진리를 외면하고 왜 이제까지 미망에서만 헤엄쳐 왔을까. 이제 미혹의 벼랑에서 또 하나의 화두를 즐겁게 내려놓을 차례입니다. ‘자성어’自性語였습니다. 빛을 호흡한다는 팩트 하나가 제 몸과 맘을 전혀 새롭게 뒤집어 놓는 것 같습니다.

실제 우리들은 빛을 마시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산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주의 파장이 아닌가. 똑같은 사물을 쳐다보아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기쁨과 슬픔으로 갈리기도 하고 길게는 행⋅불행으로 분리되기도 합니다. 길고양이를 두 사람이 똑같이 쳐다보아도 어떤 사람은 불쌍하다며 달려가 안아 주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무섭다고 도망가기도 하고 심지어 기분 나쁘다고 발길로 차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길고양이 자체는 그대로입니다. 다만 사람들의 인식에 따라 불쌍하게 또는 징그럽게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각기 자기 인식에 대한 고집, 심지어 독선이 남에게까지 피해를 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바로 산소냐 빛이냐, 생각의 차이가 일상을, 인생을 전혀 다르게 뒤집어 놓은 것입니다. 

내게 와서 꽃이 되어 준‘충맥호흡법 수행’


잠실 자생한방병원의 세미나실 창문으로 올라가는 4월의 봄 햇살 아지랑이에 저는 아직도 멍!을 놓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비로소 내게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이 생각났습니다. 역시 인연이란 아무나 되는 게 아니고 인연이 되어야 비로소 자석같이 찾아서 붙는가 봅니다. 우리들은 매월 2회씩 이곳에서 ‘충맥호흡법’을 수련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호흡을 그냥 단순한 산소를 마신다고 생각하는 것과 빛으로 온몸에 받아들인다고 판단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즉 지렁이와 독수리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땅속 지렁이에게는 단순한 미생물만 보이지만, 하늘 위 독수리는 천하를 다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저는 약 25년간 국선도 단전호흡법에만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충맥호흡법을 만나면서 새로운 인연이 되었습니다. 충맥호흡법은 백회에서 회음까지 고속도로를 뚫어 가는 수련법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우리 몸 한복판을 벤츠로 왕래하는 전기자동차 운전법을 숙달하고 있습니다. 그뿐인가! 뇌 십자로 정중앙의 숨은 신 ‘송과체’라는 뇌 핵기지를 발견하게 되면서 제 몸은 새로운 블랙홀 세계로 진입하게 된 것 같습니다. 신 원장의 한방의학적 기氣 운용과 우주 운행의 논리는 우리 민족의 뿌리 상고 시대 역사철학적 존재론 문제도 겸하고 있습니다.    

영성의 미사일을 던져 주신 종도사님


제2의 인생 길목에서 저에게는 목숨같이 소중한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 원장은 수련 때마다 지극정성으로 우리들에게 강의 자료를 프린트해 주고 관련 책자 등도 나누어 주었습니다. 저는 최근 한국독립운동사 중 ‘한의사 항일독립투사, 신광렬의 평전(달이즈믄바람에)’을 집필하느라 매일 아침이면 세면대에 코피를 쏟았습니다. 그러면서 틈틈이 충맥호흡을 했습니다. 그러자 점차 밤을 꼬박 새우면서도 이상하게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충맥호흡 특강 날에는 새벽부터 출발을 준비했습니다. 홍천 임시 숙소에서 서울로 차를 몰아서 혼과 몸 그리고 몸빛을 바꾸는 수련에 참가해 왔습니다. 교수들 기질이란 게 우선 남을 잘 믿지 않습니다. 과학적인 근거나 논리가 아니면 고개를 돌립니다. 다행히 한의사이자 융합고고학 박사인 신 원장의 특강이어서 『환단고기』 이론과 충맥호흡 실기에 매혹되어 매월 2회씩 이렇게 달려오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신민식 원장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래 단전에서만 맴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충맥호흡법’을 터득하면서 백회에서 회음까지 고속도로가 뚫리기 시작했습니다. 국선도의 축기가 연계되어 백회가 활화산으로 폭발된 것입니다. 곁에서 같이 수련하는 동료 교수들도 신 원장의 실기 지도를 열심히 따라 해 오고 있습니다. 첫 번째 백회가 순간적으로 뚫린 것은 안경전 종도사님과 악수를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영성의 미사일이 시멘트 같은 저의 백회를 뚫은 것 같습니다. 바로 청담동 새천년호텔에서의 <조화선 명상 포럼>에서였습니다. 그날 강단 앞으로 나가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큰 영광입니다.

첫 번째 인연은 종도사님에게서 백회가 뚫린 것이고, 두 번째 인연은 신민식 원장님에 의해서 충맥호흡법 고속도로가 개통된 것입니다. 전혀 새로운 인연입니다. 제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가치 문제, 존재론적 블랙홀의 의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약 80년간 헛발질 끝에 한용운의 ‘날카로운 첫 키스’를 만나게 된 것은 금년의 큰 행운이자 소중한 인연입니다.  

삶과 죽음 그리고 나


둘.    
‘나는 누구인가?’ 밑그림이 그려질 것 같습니다. 죽음은 생물입니다. 생물이 사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면 죽음 이후에 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생물학적 문제를 뛰어넘는 영성 문제 또는 종교 문제에 누구나 불안하고 불편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자칫 사교에 빠져서 많은 재산을 날리고 사회적 문제까지 야기하는 일들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살아갈수록 용기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감이 더 두꺼워지는 것은 왜 그럴까, 때때로 손톱 무좀같이 우리들의 눈썹을 가로막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입니다. 죽음을 부정하거나 회피할수록 죽음은 더욱 가까이에서 자신의 옆구리를 송곳으로 찔러 댑니다. 걱정과 불안도 죽음과 연계되어 포장돼 나오곤 합니다. 죽음을 경계하고 도망칠수록 죽음은 더 목공 본드처럼 더 가까이에서 달라붙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수용하고 동반할 때 그놈은 좋은 친구이자 반려자가 됩니다. 어떻게 생각하든 그놈은 죽을 때까지 동행해야 합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깨동무하고 같이 가야 합니다. 어쩌다 태어난 우리들은 또 어쩌다 가는 것입니다. 환생하든 안 하든 그다음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고민한다고 해서 이생에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머님의 지극하신 염원 기도


저는 기氣와 영성 문제에 대해 그동안 유난히 함몰되어 있었습니다. 어디에 무슨 도사가 있다고 하면 지옥까지 찾아갈 정도였습니다. 기공술과 도인이라면 자다가도 뛰쳐나갔습니다. 신림동 서울대 뒤 관악산 골짜기에 연줄도 없이 연을 날린다는 도사를 만나러 한 달간이나 밤 12시면 산속을 몰래 헤메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1995년에는 중국 낙양외대에 교환교수로 파견 나가 있을 때에도 도사를 찾아 대륙 전역을 헤메고 다녔습니다. 당시 유명한 낙양의 엄신 수제자도 만나고, 심양의 빠륜궁八輪功 도사들도 만나서 그들의 기묘한 기공술도 배웠습니다. 또한 사기꾼도 만나고 진짜 도술인도 살짝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헛발질이었습니다. 허깨비들한테 시간만 낭비했습니다. 

우리 어머니 외가는 대대로 불교 집안입니다. 외할머니는 다락방에 부처님을 모셔 놓고 꼭두새벽이면 청수를 올리고 향을 피웠습니다. 맹신적인 면도 없지 않았지만 또 무시할 수 없는 영성의 존재라는 것도 분명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엉덩이 뒤를 따라 전국의 웬만한 큰 사찰은 안 다녀 본 곳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팔공산 갓바위는 우리 집에 크고 작은 일이 터질 때마다 어머니가 찾았습니다. 어머니는 때로 무당같이 신기神氣가 강했습니다. 어쩌면 여승이나 무당으로 살았어야 더 편안하지 않았을까.

결국 우리 부모님은 제가 고교 입시반 때 이혼했습니다. 함경도 사나이 기질이 강한 아버지와 역시 신기가 강한 어머니의 성격이 잘 안 맞았습니다. 어머니는 조선조 말기 몰락한 귀족인 민씨 집안의 외가로서 마포구에서 성장했습니다. 혼인 생활은 파란만장한 일대기였습니다.

그 벼랑 끝 속에 저 또한 위험한 담벼락을 걸어왔습니다. 제가 사춘기 때에는 마산 3.15 의거 사건으로 체포되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또 6.3 사태 주모자로 전국 수배를 당했습니다. 덕분에 제1공수특전단 요원을 거쳐 월남 백마부대에서 총알을 날려야 했습니다. 어쨌든 평범한 삶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목숨이 붙어 온 것은 어쩌면 어머니의 염불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저는 다시 진지한 가부좌를 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시천주주와 태을주, 그리고 도전道典으로의 삶


시천주와 태을주 주문을 외우고 『도전道典』에 대한 깊은 공부를 이제부터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강옥 수호사님의 지도로 최근 『도전道典』의 가르침을 듣고 있습니다. 또한 매주 동방신선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두 손을 모으고 있습니다. 또한 신 원장의 『환단고기』 등 특강에 매료된 교수들이 ‘조화선’이란 단톡방을 만들어 연구 모임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불교 신자인 아내도 동참하여 STB 상생방송을 열심히 시청하고 있습니다. 앞뒤로 잘 매듭된 행복의 실타래가 아닌가 합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우선 이렇게 입도를 해서 더욱 용맹정진할 것입니다. STB 상생방송은 교양 프로그램이 풍부해서 청소년들에게 매력적인 볼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민족의 역사철학적 뿌리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 등은 일반 국민들에게도 필수적으로 인지해야 할 콘텐츠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현재 중고교 역사와 문학 교과서는 크게 기울어진 운동장입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전통문화와 역사를 올바르게 전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제가 상생방송에서 ‘정통한국문학사’도 강의하고 싶습니다. 평생 한국문학을 연구해 온 제 모든 것을 헌신하고 싶습니다.  

 

출처: https://www.greatope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