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말하는 나라를 다스리는 법도와 역사학은 우주의 진리의 뿌리 자리인 삼신의 도를 근본으로 한다. 행촌 이암은 나라를 열어서 잘 다스리는 길, 그래서 모든 사람이 행복한 신교 문화의 주인, 삼신 문화의 창업자, 삼신 상제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길을 국가 경영의 원리로 얘기하고 있다. 정치학의 근본은 국가를 잘 경영하는 것인데, 그것이 위국지도다. 위국지도란 바로 삼신의 도이며 정치의 주제는 이 위국지도를 잘 깨달아서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학, 역사학이란 신교 문화, 곧 조물주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세상의 역사학자들은 진리의 맥이 완전히 단절되어 진리의 뿌리를 모른다. 정신적으로 보면 문화적인 고아다. 이 우주의 진리 근본, 조물주와 인간의 관계,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역사학의 근본이고, 하늘과 땅과 인간의 역사 무대를 바르게 깨치는 것이 역사학이다. 그런데 이 사학이 삼신의 이치를 근본으로 하지 않아서 역사의 밑바탕, 역사학의 근거에 밝지 못한즉,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은즉, 사기가 진작될 수 없다. 여기서 사기를 ‘선비의 기개’ 등으로 해석하는데, ‘사기’는 용기라든지 인생의 보람, 즐거움, 기쁨 같은 것을 뜻한다.
이 세상을 사는 맛이 안 나서 사기가 진작이 안 되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려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나라를 다스리는 법이 전부 삐뚤어지고 분열된다는 것이다.
역사학의 근본 법도라는 것이 깎아내릴 것은 깎아내리고, 끌어올릴 것은 끌어올려, 인물을 저울질하여 그 사람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판단을 하는 것인데, 무엇을 깎아내리고 기리며 저울질하는가? ‘네가 신교를 제대로 깨치고 있느냐, 신교에 대해 한 소식을 듣고 있느냐. 아니면 신교 문화와 단절된 사람이냐? 과연 제대로 깨진 인간이냐? 역사의 기초라도 아는 인간이냐?’ 궁극으로 가면 그것을 저울질하는 것이다.
그리고 때의 흐름을 논하고 진단하니, 예를 들어 삼신문화가 흥왕하던 때와 외래 사상에 침몰되던 때 등 때의 추세를 논하니. 이것이 만세의 표준, 근본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나라 백성의 삶은 참으로 오래되었다. 한민족의 역사는 일만 년이니 얼마나 유구한가. 이 나라 백성은 신교문화의 종주이고 삼신 상제님의 원아들과 딸이다. 동북아는 하나님 문화의 원고향이다. 이 세계 역사의 문이 열리고 세상을 다스린 조서 또한 신교문화의 맥을 바르게 증명해 왔기에, 나라와 신교문화의 역사가 늘 병존해 왔다.
역사를 돌아보면 환국 시대부터 조선 초기인 세조 때까지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렸으며, 마지막 왕조인 조선이 망할 무렵(1897년)에도 고종이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꾼 사실이 있다. 황제 문화를 선포하고 천자 문화 본래의 위엄으로 돌아간 것이다.
사람과 정사가 함께 거론되었으니, 즉 인간을 말할 때는 항상 위국지도와 함께 삼신문화의 정사를 얘기했으니 이것이 모두 자아가 먼저 이야기하며 소중히 여겨야 할 바이다.
아아, 정치는 그릇과 같고 사람은 도와 같으니 그릇이 도를 떠나서 어떻게 존재할 수 있으며,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라는 것은 그 형체를 움직이는 혼과 같으니, 형체가 혼을 잃어버리고 어떻게 보존이 될 수 있겠는가. 도와 기를 함께 닦는 자도 나이고, 형체, 몸뚱이와 혼을 함께 갖고 살면서 그것을 키워 나가는 것도 역시 나이니, 그러므로 천하만사는 무엇보다 먼저 나를 바르게 아는 데 달려 있다.
그런즉 나를 알고자 한다면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겠는가? 바로 여기에 자아 문제, 나의 문제, 우리 자신의 모든 문제, 방황하는 인생의 해답이 들어 있다. 아무리 뛰어난 천체과학자, 유전공학자 또는 컴퓨터공학자, 반도체의 일인자, 또는 각 분야의 전문의, 생물학자, 또는 경제학자, 세상을 한 번 흔들고 싶은 정치가, 음악, 미술 같은 분야의 위대한 예술가, 또는 인생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살고 있다 할지라도 진리의 원뿌리를 모르면, 너는 아직 진정한 인간이 아니란 말이다. 진리의 근본을 모르기 때문에 여전히 헤매는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알고자 할 때는, 내가 누구인지, 내 생명은 어디에서 비롯하였으며 내 생명의 불멸성은 어느 곳에서 비롯한 것인지 알고자 할 때는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겠는가? 이제 여기부터 본론이다. 행촌 이암이 말하고 싶은 진리의 주제, 역사의 원주제인 신교문화가 나온다.
여기서 삼신일체 사상, 삼신일체 진리의 주제를 선포하고 있다. 진리의 명제는 뭐냐? ‘삼신이 한 몸으로 계시는 원리’라는 말이다. 『환단고기』 전체를 읽어 보면 삼신이 한 몸으로 계시는 원리. 이것이 생명 창조의 원리요, 역사 구성의 원리이고, 인간 생성의 원리이며 현실이 지속되어 가는 진리의 근본 주제임을 밝히고 있다.
사실 이것이 기가 막힌 말이다. 진리의 원주제는 삼신일체의 도다. 삼신은 한 몸이다. 신은 셋인 것 같은데 하나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을 정의할 때도 ‘삼신일체상제’라 한다. 삼신과 한 몸이 되어 존재하시는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상제님, 그것을 줄여서 삼신상제, 더 줄여서 상제님이라 한다. 따라서 ‘상제님은 어떤 분인가? 상제님은 왜 우주에 존재해야 하는가?’ 이것을 알려면 삼신을 알아야 한다. 삼신과 한 몸이 되어 계시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상제님께서 존재하시고 우주를 다스리시는 이치는 바로 삼신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삼신이 한 몸으로 계시는 도는 어디에 있느냐? 바로 ‘대원일지의’, 대원일의 뜻에 있다. 이 우주의 조화, 삼신의 조화는 대원일, 무한히 크고 원만하고 하나다라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것을 낳아서 조화시키니 원융무애圓融無礙한 것이다. 원만할 원, 둥글 원 자. 원이라는 것은 어디가 막히고 제한되어 있는 게 아니잖은가. 원만하다, 둥글다는 것은 진리의 오묘함, 진리의 영원함을 그려 주는 그림 언어다. 삼신의 창조성과 조화를 다시 ‘대원일’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을 이유립 선생은 순수한 우리말로 커발환이라 했다. 배달국 시조 환웅의 호칭인 커발환이다. 그다음, 삼신에 대한 정의가 나오고 삼신과 인간 생명과의 관계가 나온다. 삼신의 세 손길 가운데 조화의 신은 내려와 나의 본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 본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낳아서 기르는, 교화를 주장하는 신은 내려와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 자체인 나의 목숨, 명이 되었고. 그러니 나의 생명은 원래 불멸이다. 왜? 삼신의 영원한 생명을 그대로 지녔기 때문이다.
삼신의 또 하나의 손길인 치화신은 내려와서 내 몸의 정이 되었으니. 이것이 성명정性命精이다. 삼신이 내 몸에 들어와서 세 가지 참된 것[삼진三眞]이 된 것이다.
행촌 이암이 전한 전체 47대 단군의 가르침에서도 나타나지만 이 서문의 기본 주제가 내 몸속에 들어와 있는 삼신, 즉 성명정性命精이다. 하나님의 본성과 하나님의 무궁한 생명과 그리고 우주를 잡아 돌리는 하나님의 정기이다. 그러므로 오직 인간만이 삼신을 받아서 만물 가운데 가장 존귀한 생명이 되었다.
삼신의 원마음, 조물주의 원마음, 나의 본마음, 성이라는 것은 신의 뿌리이니. 신이 하나님의 마음인 성에 근본을 두고 있다고 해서 이 성이 신은 아니요. 우리 몸속에서 기가 환히 밝고 밝아서 어둡지 않은 것, 어둠이 다 사라진 것이 진성이라.
우리가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런데 이 어둠이 사라지고 내 몸속의 기가 환히 빛나서 어둠이 전혀 없는 것, 이것이 바로 진성의 경계라는 말이다. 진성은 하나님의 본래의 밝은 마음, 우리의 원마음자리다. 참마음자리다. 사실 우리가 그것을 닦는 것 아닌가.
태을주 주문을 읽어서 잡된 생각, 순간순간 바뀌는 생각이 다 없어져 ‘진리 의식’이 확 뚫려 버리면, 마치 막혔던 하수구가 확 뚫리듯 이 우주와 내가 한마음, ‘한 몸이 돼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우주 천지와 한 몸이 될 때 조물주 삼신의 본래 마음과 조물주의 영원한 생명, 불멸의 명과 조물주의 정기, 정을 회복하게 된다.
이러므로 신은 기를 떠날 수 없고, 기는 신을 떠날 수 없나니. 신은 기를 타고 또 기 속에는 신이 있잖은가. 그 기를 움직이게 하는 신의 손길이 있다. 내 몸속에 있는 신이 기와 더불어 하나가 된 후에, 내 몸속에 있는 성과 명,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무궁한 생명의 경계를 가히 볼 수가 있다.
내 몸속에 있는 조물주 삼신의 마음인 성은 삼신의 무궁한 생명과 떨어질 수가 없고 또한 내 몸속의 영원한 생명은 그 주인 되는 원마음, 신의 본성을 떠날 수가 없나니. 내 몸속에 있는 삼신의 마음, 본성이 무궁한 삼신의 생명과 합일이 된 연후에, 내 몸속의 아직 신으로 비롯되지 않은 원래의 본성과, 기로 비롯되지 않은 본래의 영원한 생명의 경계를 볼 수가 있다.
본래 우리 본성은 만물을 환히 비추는 거울이다. 그것이 영의 세계다. 배워서 아는 게 아니라 직관으로 깨닫는 것이다. 그 모델이 바로 『도전』에 나오는 복남이다. 복남이는 비춰서 그냥 환히 다 알았다. 안내성 성도가 그러지 않는가. 어른이 된 복남의 이름이 운기인데, “백운기는 대허령이기 때문에 본래 다 안다”고. 그게 영각이다.
성은 그 본성이 영각이다. 비춰서 환히 깨닫는 것. 만물을 환히 비추는 신의 본성으로 비춰서 다 깨닫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천신, 삼신과 더불어 그 신성의 근원을 함께하고. 즉 내 몸속에 있는 본성이 우주 만유를 비춰서 환히 아는 지혜와 조화의 능력은 천신과 근원이 같다는 것이다.
삼신의 영원한 생명이 우리 인간의 몸을 통해 현실의 삶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저 산천, 대자연과 더불어 그 기가 동일하고, 즉 천지와 더불어 내 몸의 기가 같다는 말씀이다. 또 내 몸의 정기가 자손을 통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창생과 더불어 그 하는 일이 같으니. 바로 천지의 뜻과 목적을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이뤄 나가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집일함삼 회삼귀일, 여기서 ‘일’은 일기로, ‘삼’은 삼신으로 이해를 해라. 때로는 ‘일’을 일신으로 이해해도 된다. 집일이 함삼, 우리가 하나를 제대로 잡아 이해하고 깨치고 생활화하여 온몸으로 체험하고 깨달으면, 하나 그 자체가 되면, 동시에 함삼, 그 하나의 일기一氣를 움직이는 삼신의 조화가 그 속에 다 들어 있다.
그다음 회삼귀일, 우리가 삼신의 이치를 제대로 깨치면, 우주를 움직이는 하나의 조화기운으로 돌아간다. 집일이 함삼하고 회삼이 귀일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즉 성명정이 그 근원은 하나의 일신이라는 말이다.
‘정심불변’에서 ‘심’은 내 몸의 삼신의 본성인 ‘성’이다. 그러므로 이 마음, 조물주의 본성, 본래의 마음을 확고히 정해서 변치 않는 것을 일러 진아, 참된 나라고 한다. 다시 말해 몸속의 삼신이 그대로 발현이 되고, 즉 우주의 삼신, 만물을 낳아 길러서 다스리는 조교치 삼신의 본래 신성을 그대로 깨쳐서 확고한 마음으로 우주의 진정한 주인이 된 것, 이것을 일러 참된 나라고 한다는 것이다.
20세기 현대사에서 이 진아에 대해 제대로 전한 사람이 인도 사람 마흐리쉬이다. 물론 거기에 신도神道의 이치는 안 들어 있지만, 마흐리시는 석가모니 못지않게 근본을 깨친 사람이다. 이 진아는 무엇을 공부해서 아는 게 아니다. 무엇을 배워서 깨달아 아는 것이 아니고 한순간에 번개처럼 깨치는 것이다. 성명정의 근본 일신 자리를 깨치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걸 상철上哲이라 한다, 상등 철인. 그리고 무엇을 배워서 ‘아, 영원한 목숨, 불멸성이 있구나.’ 하고 머리를 굴려서, 지식을 통해서 좀 깨닫는 것은 중철中哲이다. 또 힘써서 계율을 써 놓고 ‘오늘은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하며 정을 보존하는 공부 단계는 하철下哲이다.
우리 몸에서 성명정을 보면, 위계질서가 있는 것처럼 제일 위 머릿속에 성이 있고, 가슴의 중심에서 명이 작용하고, 그다음 배꼽 아래 하단전에 정의 작용이 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는 내 몸의 모든 동력動力을 잡아 돌리는 이 정을 잘 보존하는 것이 근본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철이라는 것이다. 깨달음의 그 위 단계는 영원한 생명, 불멸이 있다는 걸 깨닫는 것, 지명知命이 중철이다. 그리고 이 대우주의 생명의 근원으로서 삼신의 본래 마음자리, 성을 깨치면[知性] 명과 정을 자기가 확고하게 직접 다스릴 줄 안다.
본성을 제대로 한순간에 깨치는 그게 상철이다. 지성知性과 지명知命과 지정知精에서 가장 중요한 게 그 주재 자리인 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 머리의 중심에 있는 성 자리, 조물주이신 대우주 조화옹의 마음자리, 그 본성을 한순간에 깨치는 것을 불가에서는 돈오頓悟라 한다. 그것은 배워서 잔머리 굴려서 되는 게 아니다. 성숙해서 어느 날 한순간에 홀연히 깨닫는 것이다. 그렇게 완전하게 본성을 깨치는 게 바로 진아라는 말이다.
그다음 온갖 신도의 조화, 신통력으로 변화를 지어내는 게 바로 일신의 세계이니, 내 몸속의 삼신인 성명정 삼진을 완전히 드러낸 진아라는 것은 일신이 머무는 궁전이라. 진아, 참된 나는 조물주 삼신의 궁전, 즉 삼신이 머물러 계시는 집이다. 인간에 대한 정의로 이보다 더 지극한 것이 없다.
바로 이러한 진리의 근원을 깨달아서 삼신의 법, 삼신 원리의 법에 의지하여 수행을 하면, 상서롭고 길조가 충만한 천지 기운이 스스로 이르고 삼신의 영원한 생명의 광명이 항상 비치나니, 이것이 바로 하늘과 인간이 함께 하나가 되는 경계라. 이런 삼신의 진리와 삼신의 구성 원리를 확고히 잡아서 삼신계맹(삼신이 내려 주신 성명정은 우리 인생의 으뜸이 되는 진리의 계명이다), 삼신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진리의 원칙적인 이 기틀에 대한 맹세를 굳건히 지키면 우주의 절대 조화의 일자[一神]에 비로소 능히 돌아갈 수 있게 된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다시 정리를 한다. 그러므로 성과 명과 정이 기틀이 없음은(여기서 기틀이 없다는 것은 일체의 경계로 하나가 된 것oneness을 뜻한다) 완전히 삼진이 원융무애하게 하나가 되어 있는 경계, 바로 삼신과 한 몸으로 계시는 상제님의 조화 경계이시니. 대우주 만물과 더불어 조화의 한 몸으로 계신다.
태을주를 읽다 보면 우주의 조화 삼신과 하나 되게 해 주는 기운을 받아서 대우주와 내가 한 몸이 되는 경계를 체험하게 된다. 또한 상제님은 세상 창생들의 마음과 기운과 몸과 더불어 아무 자취 없이 영원히 계신다.
심기신이 다시 더 세밀하게 작용하는 게 감식촉感息觸이다. 창생들의 느낌과 호흡과 접촉이 일체인 경계에서 늘 머무시는 분은 환인주조, 즉 삼신 문화를 처음 창세 역사에 드러내신 분으로 인류 시원 문화의 주인이며 인류의 뿌리 조상이시니. 이 지구촌 창세 시대의 인류를 구환족이라 한다. 환웅천황 때는 구황족이라 했고 조선에 가서는 구이九夷, 또는 구려九黎라고 했다. 환인천제는 지구촌 세계만방과 더불어 치우침이 없이 베푸시면서 한결같이 함께 기뻐하시며 하늘 땅, 인간과 더불어 함이 없이 스스로 조화를 누리신다. 진리의 틀이 이렇게 되어 있는 고로, 신교문화의 근원적 가르침을 바로 세우려고 하는 자는 오직 먼저 나를 세워야 한다.
무엇으로 나를 세우는가? 신교의 진리로 세워야 한다는 말씀이다. 성명정 심기신 감식촉, 우리 몸속의 삼신의 삼단 작용, 아홉 개의 진리 개념에 대해 뚫어지게 꿰야 한다는 말이다. 우주의 삼신의 이치로써 내 몸속의 삼진, 구체적으로 아홉 개의 진리 개념을 관통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삼신의 이치로 자아를 확고히 세우고 형체를 뜯어고치려고 하는 자는 먼저 무형인 내 몸속의 삼신의 이치, 삼진을 바로 세워야 하니 이것이 바로 나를 알고 내가 우주의 진정한 주인으로 홀로 섬을 구하는 유일한 방도이다.
오호 슬프도다. 부여의 원도인 신교의 도가 없어진 연후에 한인들이 부여에 쳐들어왔으며. 한나라 무제가 옛 환국, 배달, 조선의 땅을 다 먹어 버리려고 부여를 침략하지 않았는가.
고려에, 원래 있었던 신교의 도가 없어진 연후에 몽고가 고려에 쳐들어왔거니와. 만일 그때에 앞서서, 즉 본래 우리의 도, 신교가 살아 있어서 이를 제압을 하여, 만일 부여에 동방 문화의 종주로서 그 혼과 기백, 문화의 원형이 그대로 다 있었다면, 백성들이 삼신상제님의 진리 군사로 무장되어 있었을 것 아닌가. 그러면 한인들이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구나.’ 하고 자기네 한나라로 돌아갔을 것이요. 고려에 고려의 도가 그대로 있었다면 몽고는 제 나라로 그냥 돌아갔을 것이다.
여기서 ‘고려지도’를 단순하게 고려의 도라고 해석하면 원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고려지도는 바로 신교다. 부여의 도, 조선의 도, 대한민국의 도도 신교다. 앞으로 후천이 돼서 상제님 세상이 와도 상제님의 원가르침인 신교가 있을 뿐이다.
아, 슬프도다. 도와 기가 다 죽어 있고 형과 혼이 다 전멸된 때를 맞이했구나. 신교문화가 완전히 다 왜곡 말살 조작이 되고, 지금의 유·불·선이 들어왔다는 말이다.
사실 지금의 유·불·선도 내내 신교의 원형 삼도로부터 나온 것이다. 원형 삼도란 무엇인가? 삼신이 자기를 드러낸 것이 하늘과 땅과 인간이다. 삼신 가운데 하늘은 조화신을 주장하고 땅은 어머니로서 낳아서 기르는 교화신을 주장한다. 인간은 천지의 주인으로서 만물을 다스리는 치화신을 주장한다. 삼신이 천지인 삼재로 드러났다. 살아 있는 삼신인 하늘, 땅, 인간은 각기 크게 삼신의 한 가지 속성을 주장한다.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의 뜻을 천지인 속에서 구현한다. 그리고 인간이 이 삼신의 도를 문명 속에서 닦는 각기 다른 전공 분야가 있는데 그게 원형 삼도로서, 유불선의 원형이다.
하늘의 도, 천도의 조화를 주장하는 것을 전도佺道라 한다. 인亻 변 옆에 온전 전全 자, 전도. 그다음 어머니의 도, 삼신의 교화의 도를 전공을 하는 것이 선도仙道다. 그다음 삼신 가운데 치화의 신, 인도人道를 주장하는 게 바로 종도倧道다. 인 변 옆에 마루 종 자. 이 천도의 조화신을 근거로 해서 나온 전도를 계승한 것이 불도이고, 교화신을 주장하는 지도를 근거로 해서 선도가 계승이 되었고, 인도의 치화신을 근거로 해서 나온 종도를 계승한 것이 바로 유도다. 즉 삼신의 삼재지도, 천지인에서 원형 삼도인 전도·선도·종도가 나오고 이것을 계승한 것이 바로 불도·선도·유도다.
그 원형 삼도 가운데 종도가 살아 있고, 선도는 지속이 돼서 지금까지 그 이름이 남아 있는데 전도만이 깨진 것이다. 원형 삼도에서 삼신의 조화의 도, 전도가 깨지면서 역사의 뿌리가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다. 이것을 회복한 것이 「단군세기」와 「태백일사」다. 특히 「태백일사」 여덟 편에 전도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단군세기 강독 마무리]
『환단고기』 강독을 제대로, 많이 들은 사람은 기운을 받아서, 집일함삼만 듣고도 일자, 하나를 잡을 줄 알아야 한다.
대우주를 움직이는 대우주 조화의 근원, 이 일자를 잡아야 일상제를 바르게 잡을 수 있다. 집일 공부를 해야 동시에 그 속에서 함삼, 이 우주의 지극한 조화 세계, 일기를 타고 노시면서 우주를 창조하고 만물을 낳아 기르는 조물주 삼신의 손길이 인식된다. 그러면 삼신이 우리 몸에 들어와 우리 몸의 살아 있는 삼신, 성명정이 발동이 되어 죽을병이 들어도 벌떡 일어나는 것이다.
상제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나는 손이 한 마디만 있어도 일어나고 머리카락 하나만 있어도 거기 붙어서 나오느니라.”(道典 10:16:3)라고 하셨다. 그게 선이다, 불멸의 선. 인간은 누구나 ‘나는 죽지 않는다’ 하면 안 죽는다. 다시 일어난다. 회복이 되는 것이다. 왜? 대우주의 일자, 불멸의 생명과 코드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부터 호흡을 할 때는 ‘이 대우주의 지극한 한 기운을 마신다’는 생각을 하고, 보은의 마음을 가져라. 그러면 하루 생활도 즐겁고, 깨달음이 깊어지면서 상제님의 천하사 일꾼 의식이 강렬해진다.( 안경전 종도사님 /2011년 7월 1일 말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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