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북쪽으로 가서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 사람들도 그것은 동이족의 문화, 동방문화라고 합니다. 자기들 문화하고는 색깔이, 문화 양식이 달라요. 그런데 지난 1920년대부터 불란서 사람 에밀리상(Emile Licent, 1876~ 1952)을 중심으로 해서 처음 여기가 발굴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양계초梁啓超의 아들이 가서 그 뒤에 발굴하고 일본군이 중국을 침략하기 전에 선발대가 가서 발굴을 하고 그렇게 해서 홍산문화紅山文化라는 이름이 생겼는데요.
제일 위쪽에 보면 그 소하서小河西 문화가 9천 년 전에서 8,500년 전에 이런 신석기 유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대표적인 옥문화의 첫 모델이라고 볼 수 있는 이 흥륭와興隆漥 문화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옥결玉玦, 귀걸이가 나오고 있어요.
우리나라 강원도 고성에서 8천 년 전 유물인 똑같은 양식의 귀걸이가 나오고 있는데, 저 한반도 남쪽 전라도 여수 안도리에서도 지금부터 6천 년 전 것으로 똑같은 양식의 옥귀걸이가 발굴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춘천에서 옥을 생산하는 옥산가를 알아주는데, 옥은 그 빛이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신성을 드러내 주는 제1의 보석입니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좋은 보석은 옥이에요. 그래서 이 환국과 배달 시대 때는 통치자나 귀족들이 죽을 때 자기 몸의 구멍을 다 옥으로 막았어요. 그리고 악패라고 해서 옥으로 만든 성물을 손에 쥐고, 가슴에 안고서 천상으로 올라갔단 말이에요.
그 다음에 사해査海 유적지에서 돌을 쌓아서 용의 상을 만든 석소룡石塑龍이 나왔는데, 7,600년 전 유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거예요.
그 다음에 우리가 조보구趙寶溝 문화를 보면 여기서는 봉황 무늬의 그릇이 나왔는데 7천 년에서 6,400년 전 유적입니다. 이 시기는 환국의 중기예요.
그 다음에 내몽고의 동남방 홍산을 가보면 철광석으로 이뤄진 흙 성분 때문에 땅이 붉은 홍산紅山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5천 년에서 6,700년 전에 소위 홍산문화가 있었던 곳인데, 여기서 유물이 발굴되면서 홍산 유적 띠가 형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 만주 북부와 한반도, 일본, 그리고 오키나와까지 옥문화 벨트가 연결되어 있어요.
이 홍산문화 유적 중에서 특히 우하량牛河梁 같은 곳에서는 동북아의 원형 제단과 무덤, 사원 유적이 나란히 나왔어요. 한 150미터 정도 길이로 해서 총단묘塚壇廟가 나왔어요. 이것을 우리가 해석을 못하기 때문에 우리 문화가 아니라고 그러는 겁니다. 동북아 역사재단에 대한민국 역사를 대변하고 있는 역사학자들이 왜 이것을 우리 문화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느냐? 결론은 이 문화를 해석할 수 있는 세계관, 우주관이 없는 것입니다. 역사관이 결여돼 있다 이겁니다.
천원지방으로 된 무덤 양식
이걸 잘 보면 무덤 양식이 천원지방天圓地方으로 되어 있어요. 중앙을 보면 사각형이 있고 주변이 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천원지방을 해석할 수 있어야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
하늘은 둥글다, 하늘은 참을 상징하는 거예요. 모든 걸 수용해서 낳는 생명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하늘의 원융무애圓融無礙한 신성과 변화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땅은 방方이라 하는 것은, 모 방 자라고 읽는데, 모가 나다는 게 아니에요. 땅은 방정하다, 방정하다는 건 뭐예요? 반듯반듯하다 이겁니다.
우리가 기하학으로 표현할 때 하늘은 원으로, 어머니 땅은 사각형으로, 그리고 인간은 삼각형으로 표현합니다. 삼각형으로 표현한 것은, 하늘과 땅과 하나가 되는 것을 나타내는데, 이게 우리가 앉아서 수행할 때의 자세예요. 그래서 가장 평안하고 깨어 있는, 천지와 하나가 되어 있는 자세는 앉아 있을 때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거예요.
우주의 이 기하 도형의 3요소가 원방각圓方角입니다. 원과, 방형 즉 사각형과, 삼각형입니다. 우리 부호 문화에서, 동방의 부符, 부적符籍 문화를 들어갈 때, 원시언어 세계를 들어갈 때, 신의 세계를 들어갈 때는 이 3대 기호가 대단히 중요한 겁니다. 하늘과 땅과 인간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태고시대는 문화가 지금처럼 언어로서 분화되기 전이기 때문에 이런 상징, 부호로써 사람들이 자연의 마음과 하나 되어 소통을 했습니다. 지금 역사학은 그때를 미개했다고 보고 있어요. 이런 관점이, 인류를 무지에 빠뜨리게 하는 근대 역사주의, 소위 실증사관, 과학주의 실증사관입니다. 역사로 증명이 되지 않은 건 다 부정하고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료 해석을 보류하라는 거예요. 지금 모든 역사책이 태고시대 사람들을 나무 이파리로 가리고 움집에서 살던 그런 반야만인으로 기술하고, 유적지도 다 그런 원시인의 터전으로 도배를 해 놓았어요. 이런 해석이야말로 인류의 창세문명, 황금시절 문명을 모독하는, 인류를 야만의 상태로 영원히 빠뜨리는 역사학계의 오류란 말입니다.
우하량은 83년도에 발굴이 됐고 그 전에 79년도에 발굴된 동산취東山嘴에서 천원지방 양식의 무덤이 자그마치 천 개가 나왔어요. 그 다음에 하가점 문화를 보면 하가점 하층은 4,300년 전에 고조선 시대의 유적지입니다. 여기에서 제천단이 많이 나왔어요. 소도 제천단이 백 개 이상 나왔는데, 천제를 올리고 소의燒衣를 한 그런 유적지도 많이 나왔어요. 그리고 치雉를 둔 산성山城도 숱하게 나왔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조선 문화 전 영역에서 나오는 비파형 동검의 원형이, 배달 시대 때의 원형 동검이 나왔어요. 그것이 5,500년 전의 옥동검입니다. 비파형 동검이 저렇게 배달국 시대 것과 모양이 똑같잖아요. 4,500년 전 또는 4,300년 전후에, 조금 전에 봤던 하가점 하층에서 저 동검을 만든 거푸집이 나왔어요. 생산 공장이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내몽고의 저것도 고조선의 문화입니다.
이런 몇 가지 사실뿐만 아니라, 지금부터 5,900년 전에 배달국을 여신 환웅천황이 천부天符와 인印 세 개를 가지고 환국 우주광명 문화의 종통 계승자로 오셨는데, 내몽골 나만기 유적지에서 6,700년 전에서 4,900년 전에 이 옥도장 유물이 나왔어요.
그리고 당시의 원시언어, 원형문화의 언어가 저렇게 그림 문자로 기록이 돼 있습니다. 전혀 연구가 되고 있지 않은 겁니다.
- 안경전 종도사님, 2013년 환단고기 북콘서트(전주편) 말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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