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동북아 역사의 주인 한국인은 우리의 시원 역사를 잊고 있습니다. 한국의 시원 역사, 창세 역사는 어떻게 그 뿌리가 뽑혔는가?
근래 일본 제국에게 침략당하면서 나라를 뺏겼을 때 소위 식민사학이 나왔어요. 식민사학이 한국의 시원 역사를 말살한 것입니다. 뿌리를 뽑아버린 겁니다. 한국의 시원 역사는 한마디로 신화라는 겁니다. 단군은 신화이니까 그 앞에 있었던 환국·배달의 환인천제·환웅천황은 생각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초등, 중등 역사 교과서나 국내외 전문 역사서를 보아도 고구려 이전의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고구려는 어디서 왔는가? 과연 중국 식민지 한사군에서 왔는가? 알 수 없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 이유는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은 식민사학의 영향 때문입니다.
지금 교과서에는 단군조선의 건국에 대해서 한 줄 정도 나옵니다. ‘서력 전 2333년에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조선을 건국했다’고 합니다. ‘건국했다고 한다’라고 기술한 교과서도 있어요. 교과서 십여 권을 검토했는데 모두 ‘환웅이 곰에서 사람으로 변한 웅녀와 결혼했다’고 합니다.
제가 서울 대형서점에 거서 초등학교 학생이 볼 만한 책을 펼쳐 보니 배꼽 터지는 그림이 하나 있었어요. ‘웅녀가 애를 낳는 그림’이었습니다. 단군을 낳은 웅녀가 ‘아, 좋아. 내가 드디어 사람이 됐어’ 하고 놀라는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환웅과 곰이 만나서 단군왕검을 낳았다’고 해석하는 사람은 아마 한국 역사학자밖에 없을 것입니다. 곰이 여자가 되어서 환웅과 혼인해서 단군을 낳았다면 우리는 ‘곰 새끼’예요.
청산하지 못한 식민지 유산 『조선사』
식민지 유산遺産의 근본은 바로 『조선사朝鮮史』 35권입니다. 『조선사』 35권, 그 일본어 원본을 대략 보아도 편찬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서문을 보면 어떤 조직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조선사』를 편찬했는지 나옵니다. 『조선사』를 편찬하기 위해 후작 이완용, 최남선, 이능화, 일본의 기라성 같은 학자들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모여들었어요. 그리하여 당대의 독일 역사학자 랑케Leopold von Ranke(1795~1886)의 정교한 실증과학주의 역사관을 빌어서 철저한 문헌 검증을 통해서 『조선사』를 쓴다는 거예요.
『조선사』는 신라 역사로 시작됩니다. 그 다음에 고구려, 백제 역사가 들어가고, 가락국 역사가 일부 들어가는데 이건 분열의 역사입니다. 그러고서 중국 사료를 정리해서 고조선사를 썼는데 중국 식민지 기자조선에서 시작됐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역대 왕을 신대神代 1세에서 9세까지 쓰고, 10세부터 당대까지 쭉 썼어요.
이 『조선사』 35권를 편찬한 의도는 한·중·일 역사의 대세를 일본의 시각에서 보여주면서 조선 역사를 왜곡하여 중국 식민지 역사, 분열의 역사로 만드는 것입니다.
『조선사』 서문에서는, 역사라는 것은 내려오면서 구전되고 설화가 덧붙여지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사료를 선택해서 정사를 써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기록된 삼국 초기의 기록 즉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가락의 초기 역사 같은 것도 믿을 수 없다고 일종의 복선伏線을 깔아 놓습니다.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는 고구려, 백제, 신라도 한 4백 년 정도 지나서 왕조 국가의 전체적인 기틀이 섰다고 주장했습니다. 5백 년, 6백 년까지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캐나다 벤쿠버에 있는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 한국어과의 베이커Dob Baker 교수는 ‘진정한 한국사는 고려부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전은 분열의 역사라는 겁니다.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선사』 35권과 자료집 60권을 같이 만들었는데 그 핵심은 조선의 역사는 중국 식민지 기자조선에서 시작되었고 또 분열의 역사로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뒤에 한 무제가 쳐들어와서 한사군을 설치했으니 북쪽은 중국 식민지가 분명했다고 강조합니다. 또 남쪽에는 임나任那가 있었다고 엄청나게 강조합니다. 가야 땅을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가 2백 년 이상 다스렸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백제와 신라까지, 한강 이남을 거반 다 다스렸다고 하기도 했어요.
조선사편수회는 한국인의 타율성, 당파성, 모방성, 사대성, 정체성, 후진성을 들고 식민지 기원설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은 뿌리는 같으니까 함께 잘 지내야 한다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박성수朴成壽 교수님이 『조선사』 35권을 분석하여 수년 전에 단행본으로 냈는데,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선 왕조는 중국의 속국’이라는 것을 굉장히 강조하고, 조선사의 앞과 뒤를 크게 잘라서 한국 사람이 한국의 역사가 어디에서 왔는지, 한국인이 누구인지 모르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일제가 조선인의 독립사상을, 나라를 되찾으려는 싹을 잘라버리기 위해서 시원 역사와 고유정신을 파괴하고, 일본에 동화될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려 했다는 것입니다.
구사학과 신사학을 넘어서는 대한사관
역사학의 발전 과정에 구사학舊史學과 신사학新史學이 있었습니다. 구사학old history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복원하기 위해서 사료와 문헌을 엄정하게 비판하고 고고학적으로 검증하는 것을 중시합니다. 당시 일본이 그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랑케의 제자들이 일본 동경대에 오기도 하고 일본 학자들이 독일에 가서 직접 교육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학 즉 과학주의에 입각한 구사학은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거반 무너졌습니다. 역사의 진실을 100% 다 안다는 것은 환상 같은 것이니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신사학new history이 나왔습니다. 신사학에서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복원하는 것보다 문화의 정신, 역사정신을 바르게 해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신사학도 결국 지식의 상대주의, 해석의 상대주의에 빠졌습니다.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 등 일본 학자들이 구사학에 해당하는 근대적인 실증주의, 문헌고증주의를 들고 나와서 1936년에 낸 『조선사』는 1960년대 전후부터 한국의 내로라하는 사학자들에게 일종의 교과서가 되다시피 했어요.
EBS에서 식민 유산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여주는 <우리 곁의 친일 잔재>라는 다큐 시선 프로그램을 방영했습니다. 우리 애국가는 일제가 세운 만주국의 10주년을 기념하여 작곡가 안익태가 일왕에게 바친 노래인 <만주환상곡>과 유사합니다. <선구자>라는 노래도 말 탄 일본군 장교를 짝사랑하는 조선족 용정龍井 처녀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라는 거예요.
이처럼 한국인의 문화유전자가 식민사학 역사관에 오염되어 완전히 병들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없어지지 않는 식민사학의 잔재를 우리가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오늘날 우리가 부르짖는 대한사관은 구사학과 신사학을 넘어서는 제3의 역사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북아 역사의 중심인 우리 한국의 9천 년 역사문화 정신으로 막혀있는 동서양 역사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지구촌 인류가 진정으로 하나 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안경전 종도사님/ 2019. 5. 31(금),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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