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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B상생방송/환단고기 북콘서트

《환단고기 북콘서트 강화도편》- 환단고기가 밝히는 단군조선

by 가가운장 2024. 2. 15.

한민족 문화 숨결이 살아있는 본고향이자 근대사의 관문 강화도! 백두산과 한라산 사이 한반도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신성한 땅 강화도! 한민족 상고역사의 지붕 없는 박물관이자 근대 개항의 중심지 강화도! 이곳에서 위대한 역사의 환콘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역사를 잃은 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처럼 과거를 망각하면 현재 삶의 주인, 주체가 될 수 없고, 미래 비전을 당당하게 제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 역사문화를 모르고는 진정한 한국인이 될 수 없고, 세계중심에 설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단군조선부터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환국, 배달의 종통을 이어받은 단군조선은 2096년 동안 마흔일곱 분의 단군께서 통치하였으며, 크고 작은 70여 제후국을 거느린 동북아 문명의 종주였습니다. 이번 강화도 콘서트에서는 첫째 역사왜곡과 조작 말살의 주제 삼조선 문제를 살펴보고, 둘째 동방천자 나라 단군조선의 역대 단군님들의 치적을 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단군조선 문화정신의 핵심인 대한大을 통해서 한민족 미래 역사의 비전을 제시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군조선의 은혜로 중국의 고대 왕조(요. 순우임금)가 9년 대홍수의 치수에 성공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역사 문화의 혼과 위대한 단군왕검의 숨결이 깃든 강화도 환콘을 통해 교과서에서 사라진 단군조선의 머리와 몸통의 진정한 역사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지구촌 어디에 살든 우리는 대한 사람입니다. 대한이 어디서 왔는지는 알아야 합니다. 이제 대한 사람의 위대한 역사의 혼을 심어 주신 위대한 단군들의 치적과 깨달음의 심장소리를 느끼고, 숨겨진 역사 진실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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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단군의 주요 치적

, 그러면 이제 역대 단군의 주요 치적을 간단히 정리해 보겠어요.

 

- 초대 단군왕검

시조 단군왕검은 38세에 즉위하셔서 제일 먼저 환국, 배달로부터 전수받은 우주광명의 홍익인간 심법을 어떻게 백성들이 생활 속에서 실현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제정한 팔조 가르침을 내려 주셨어요. 8조 조칙은 지금 우리가 직접 손으로 써서 안방, 거실 또는 냉장고, 아니면 운전대 옆에다가 붙여놓고 한번 읽어볼 만도 합니다.

 

일심을 가져야, 지극하고도 순수한 정성을 가져야 천지 부모, 천지의 주인이신 삼신 상제님과 한마음이 될 수 있다는 게 첫째 가르침입니다. 여기에는 하느님을 경배하려면 부모와 조상, 가족들과 어떤 마음으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늘의 도움을 받아 복록을 누릴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심법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 외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을 쌓게 하셨지요. 재위 50, 서기전 2284년에 홍수가 범람하자 이듬해에 마리산에 참성단을 쌓고 천제를 올리신 거예요.

 

또 치우천황의 후손인 치두남을 저울추 역할을 하는 번한의 초대 왕으로 임명하셨고, 중국 대륙이 위기에 처했던 9년 홍수 때 맏아들 부루 태자를 보내어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을 중국(우나라 사공 우)에 전해서 치수를 하게 하여, 요순시대 다음에 하나라 왕조가 건국되는 운수를 열어주셨어요.

 

- 2세 부루 단군

그 다음 단군왕검의 아들 부루 태자가 2세 단군입니다. 이분의 업적 가운데 가장 뜻 깊은 것이 어아가於阿歌를 지으신 겁니다. 알렉산더 대왕 이상으로 무용이 뛰어난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군사들이 전쟁을 할 때 어아가를 불렀다고 하는데, 부루 단군이 어아가를 직접 작사 작곡을 하셨어요.

 

그 주요 내용은 배달국 환웅천황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큰 조상님 대조신을 잘 모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추수감사절의 풍속인 업주가리 문화가 시작되었어요. 부루 단군이 붕어하신 뒤 백성들이 부루 단군의 공덕을 추모하여 제사를 지낼 때, 집안의 정한 곳에다 제단을 설치하고, 단지에 곡식을 담아 모셨어요. 이 업주가리 문화는 여기서 간단히 얘기할 수 없지만, 업주가리를 전계佺戒라고도 부릅니다. 전계란 뭐냐?

 

환국, 배달을 계승하여 단군왕검이 신인 왕검으로서 동북아 대왕조 역사의 문을 여셨어요. 천지 우주광명 인간, 홍익인간의 도를 깨친 사람을 한 글자로 환할 환 자, 이라 합니다. 바로 그 우주광명 인간이 되는, 온전한 인간 환이 되는 생활 지침이 전계예요.

 

그러니까 부루 단군에 대한 보은 제천의식에서 우주광명의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전계를 지키는 것을 내 인생일대의 유일한 삶의 목적으로 삼는다.’는 전계위업佺戒爲業의 문화가 열린 거예요.

 

이것은 너무도 강력한 우리 한민족 한 사람 한 사람 삶의 근본 목적이요, 유일한 궁극 목적입니다. 부루 단군에 대한 제사 문화에서 시작된 구도의 삶, 전계를 내 필생의 업으로 삼는다.’는 업주가리, 업신문화가 백성 한 사람, 한 사람뿐 아니라 민족 대동 문화로 이어져 온 것입니다.

 

- 3세 가륵 단군

그 다음 3세 단군은 가륵 단군입니다. 이분은 삼랑三郞 을보륵에게 신··종전宗佺의 도에 대해 얘기해 보라고 하여 신이란 뭐냐, 왕이란 뭐냐. 또 종도란 무엇이고 온전한 우주광명 인간, 전이란 뭐냐.’ 이에 대해 가르침을 내려 주셨습니다. 삼랑이란 화랑 문화의 근원으로, 삼신을 모시는 제관입니다.

 

그리고 더 값진 업적은 동북아 최초로 우주의 이법에 따라 가림토加臨土 문자 서른여덟 자를 창제하게 한 거예요. 이것이 한글의 원형인데, 잠시 뒤에 다시 살펴보기로 하죠.

 

또 서양은 물론 지구촌 역사를 흔들어 놓은, 동북아 유목민족 가운데 가장 강력한 흉노匈奴의 시조를 내셨어요. 흉노는 본래 훈족인데, 중국에서 폄하하여 흉악한 노예 같은 위인들이다.’ 해서 흉노라고 하는데요, 가륵 단군이 삭정을 약수 지방에 유배했다가 나중에 사면을 하고, 그곳 훈족의 시조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지 고설에게 명하여 배달의 역사를 기록한 배달유기라는 책을 편찬하게 하셨어요.

 

- 4세 오사구 단군

그 다음 4세 오사구 단군은 아우 오사달을 몽고리한蒙古里汗, 지금의 몽골 왕으로 임명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4,100여 년 전에 몽골의 시조 왕이 탄생한 겁니다. 이것도 아주 놀라운 역사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위서론자들은 , 그걸 어떻게 믿냐? 환단고기는 조작한 책이야.”라고 합니다. 믿을 수 없는 내용이 많으면 역사의 진실을 가리기 전에 무조건 못 믿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환단고기역사를 이야기하면 환빠다.” 환단고기에 빠져 미친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오사구 단군 때 매년 316일에 기린굴에서 조의가관皂衣加冠의 예를 행했습니다. 고구려 때 조의선인皂衣仙人이 있었는데, 지금도 어떤 지역을 가 보니까 거기에 조의선인의 풍속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요. 숲속에 아주 거대한 절을 지어놓고 조의 비슷한 옷을 입고 수련을 하는, 한민족의 고대 전통 풍속을 그대로 행하는 구도 집단이 있습니다. 다음에 한번 소개를 해 드리려고 합니다.

 

당시 마한 왕이 6세 근우지인데, 오사구 단군의 명으로 상춘, 지금의 만주 장춘에 들어가 구월산에서 삼신께 제사 지내는 일을 도왔다고 합니다. 이 구월산이 내려와서 지금 황해도 구월산이 된 겁니다. 거기에 삼성사가 있어 지금도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고 있잖아요.

 

- 5세 구을 단군

5세 구을 단군을 보면, 단군이 장당경을 순행하여 삼신단을 쌓고 환화桓花를 많이 심으셨어요. 환화는 본래 우리 민족의 꽃입니다. 환화가 무궁화다, 진달래다 하는 여러 주장이 있지만, 지금 우리는 무궁화를 나라의 꽃으로 섬기고 있지요.

 

한마디로 한민족의 국가 통치와 경영의 바탕은 삼신 신교문화입니다. 우주의 조화주 하나님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면서 서원한 것이 동방 나라 창업의 역사, 그 번영의 도요 비결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단군조와 같이 2천여 년 동안 역년이 지속된 왕조가 별로 없어요. 신라도 천 년 왕국이라고 하잖아요.

 

흔히 로마와 이집트의 역사를 2천 년 왕조사라 하는데, 우리 환국이나 조선처럼 제대로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 11세 도해 단군

그 다음 11세 도해 단군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대시전大始殿을 지었어요. ‘동방의 유구한 9천 년 역사 문화 정신을 복원하겠다.’ 해서 큰 대 자, 비로소 시 자를 썼습니다. 큰 나무를 신단수로 정하고 그것이 환웅님의 성체다.’ 해서 환웅 천황을 받들어 모시는, 웅상雄常 문화의 전통을 다시 세우신 거예요. 이렇듯 대시전은 본래 환웅전인데 뒤에 불교가 들어와 불교도들이 석가불을 모시면서 대웅전으로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

 

그렇게 도해 단군은 환국, 배달의 시조를 섬기는 문화를 크게 부흥시켰고, 또 환국, 배달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천부경과 배달의 삼신문화에 대한 가르침, 곧 하늘과 삼신 상제님의 천상 궁전, 세계, 그리고 인간에 대한 가르침을 베푼, 366자로 이루어진 삼일신고등을 근거로 해서 환국, 배달의 경전을 완성하셨어요. 바로 염표문念標文을 창제하여 반포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염표문창제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바르고 정확하게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중국의 하나라 왕조에 이렇게 나라를 다스려라.’ 하고 국훈國訓을 전수했다는 기록도 나옵니다.

 

- 12세 아한 단군

, 그 다음, 12세 아한 단군은 순수관경비를 세웠고, 13세 흘달 단군은 소도蘇塗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天指花를 심었다고 했는데, 소도 제천행사를 다시 한 번 크게 부흥시키셨어요.

 

우주의 조화주 하나님인 삼신 상제님을 모시는 제관을 삼랑, 또는 국자랑, 천왕랑이라고도 했는데, 여기 강화도 마리산에 삼랑성이 있잖아요. 바로 국자랑을 양성하고 그들을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 했어요. 천지화란 하늘에서 이것이 너희 나라꽃이다.’ 하고 지적을 했다는 의미예요.

 

본래 화랑은 꽃을 머리에 꽂고 다니는 젊은이라는 뜻입니다. 천지화를 꽂고 다녀서 화랑이라 한 것이니 화랑의 원래 말은 천지화랑입니다. 이것을 알려 주는 곳도 환단고기』 「단군세기밖에 없어요! 환단고기는 화랑문화의 뿌리를 밝혀주는 유일한 사서입니다.

 

그리고 이때 중국 하나라 성탕으로 하여금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을 치고, ()나라를 세울 수 있도록 군대를 지원한 사건이 있었어요.

 

- 15세 대음 단군

15세 대음 단군 때는 나라의 세제를 80분의 1로 개혁했다. 그리고 아우 대심을 남선비국 대인으로 봉했다.”고 합니다. 선비족, 선비문화의 원형과 근원도 여기서 살펴볼 수가 있어요.

 

- 16세 위나 단군

16세 위나 단군 때는 영고탑寧古塔에서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셨어요. 위서론자들은 환단고기가 조작된 위서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이 영고탑 사건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아는 영고탑은 명나라, 청나라 후대에 만들어진 것인데 환단고기』 「단군세기3,600년 전에 있던 사건으로 나오니까요.

 

그러나 부여의 영고제迎鼓祭라는 제천문화 풍속이 여기에서 온 것입니다. 영고탑은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지내던 소도 제천단이자 그곳 지명으로, 영고제는 단군왕검 이전부터 내려오는 조물주 삼신 하나님을 맞이하는 천제요 대동 축제였어요. 그런 유구한 전통을 받아들이지 않고 시비를 거는 거예요. 단지 자기들의 식민 역사관의 틀에다가 꿰맞추기 위해서, 자기들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그 주장에서 벗어나는 건 모두 전부 비합리적이고 조작된 역사 이야기라고 매도하고 있습니다.

 

이 위나 단군은 단군왕검을 모실 때 환인천제, 환웅천황, 치우천황(자오지 환웅천황)까지 네 분을 모시는 제사문화의 전통을 세웠어요. 그리고 이 때 천부경天符經을 노래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 21세 소태 단군

21세 소태 단군 때는 은나라 21세 소을 왕이 사신을 보내서 조공을 바쳤다고 했어요.

 

중국의 역대 하나라, 은나라, 그리고 주나라도 초기까지 우리 조선에 사신을 보내어 문화 교류를 하면서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이 단군세기여러 곳에 나와 있어요. 은나라 22세 무정 왕이 군사를 일으켜서 우리 제후국인 귀방을 물리치고 삭도와 영지 등을 쳐들어왔다가 소태 단군에게 대패하고서 조공을 바쳤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뒤 재위 52년에 우현왕 고등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고등의 손자 색불루가 우현왕을 계승한 뒤 22세 단군으로 즉위합니다.

 

- 22세 색불루 단군

22세 색불루 단군부터 제2 왕조 시대입니다. 색불루 단군은 도읍을 송화강 아사달에서 백악산 아사달로 옮기고, 나라를 삼한에서 삼조선 체제로 바꿨어요. 그리고 중국 사서에도 나오지만, 고조선의 금팔조법을 선포했습니다. 지금 세 가지만 나오는데, 법 사상의 근원이 되는 전체 맥은 잠시 뒤에 말씀을 드릴 텐데요, 색불루 단군 때 국가 경영의 법 체계가 정립됐습니다.

 

- 23세 아홀 단군

23세 아홀 단군 때는 아우 고불가로 하여금 낙랑홀을 다스리게 했다고 합니다. 낙랑은 역사의 기원이 매우 오래 되었어요. 5,400년 전 태극기 팔괘를 만드신 태호복희란 분이 낙랑과 진의 땅을 거쳐 산동성 왼쪽으로 진출하셨다는 기록이 환단고기』 「태백일사에 나와 있습니다.

 

- 25세 솔나 단군

그 다음 25세 솔나 단군 때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들어서는데, 문왕과 그 아들 무왕이 은나라 마지막 주왕을 벌하고, 동이족 재상 강태공의 보필을 받아 새로 주나라를 세운 거예요. 이 때 은나라의 기자가 서화에 와서 은둔생활을 했다는 기록도 나옵니다.

 

이를 보면 중국이 주장하는 기자조선은 명백한 허구입니다. 단군세기25세 솔나 단군조를 보면, 기자는 한반도 조선 땅에 온 적이 없습니다.

 

- 27세 두밀 단군

27세 두밀 단군 때는 수밀이국, 양운국, 구다천국 등 여러 나라가 사신을 보내와 방물을 바쳤다고 했어요. 환국 열두 나라에 속해 있던 때의 이름이 그대로 지속된 나라들이에요.

 

- 33세 감물 단군

33세 감물 단군 때 영고탑 서문 밖에 삼성사를 세우고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고, 35세 사벌 단군 때는 장군 언파불합을 보내어 해상의 구마소, 즉 일본의 웅습熊襲을 평정했다고 합니다.

 

- 36세 매륵 단군

그리고 이제 진짜 중요한, 36세 매륵 단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일본 창세 역사 시조, 일본 건국 왕 이야기.

 

매륵 단군은 재위 3912월에, 협야후 배반명을 보내어 해상의 적을 토벌하게 하셔서 삼도(큐슈, 혼슈, 시코쿠)를 평정했습니다.

 

본래 초기 단군 시절에 이쪽 춘천의 우두국牛頭國 소시모리가 반란을 일으켜서 단군왕검이 참수를 했어요. 그 후손 가운데 배반명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건국의 시조인 신무神武 왕이 됐다는 얘기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지금도 옛날에 춘천에 소머리 나라(우두국)가 있었다.’ 해서 우두산에 참배를 하고 있어요.

 

- 43세 물리 단군, 44세 구물 단군

43세 물리 단군 때 우화충의 대반란 사건이 일어났어요. 백민성 욕살(지방 장관)인 구물이 천명을 받들어 병사를 일으켜 장당경을 평정합니다. 이듬해 홍수로 도성이 물에 잠기자 역적들이 들끓었는데, 이에 구물이 그들을 토벌하고 장수들의 추대를 받아 316일에 천제를 올린 뒤, 새 수도 장당경에서 44세 단군으로 즉위를 합니다. 이때 나라 이름을 바꾸었어요. 이때는 나라가 실질적으로 망해서 병권이 한반도의 말()조선, 만주의 진조선, 요서의 번조선, 셋으로 나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라이름을 조선에서 대부여로 바꾼 겁니다. 이것이 부여의 기원입니다.

 

삼국유사에서 단군왕검이 1,908세를 살았다고 했는데, 이것은 한 분이 그렇게 오래 사신 게 아니라, 단군조선의 나라 존속 역년이 정확하게 1,908년입니다. 44세 단군부터 47세 고열가 단군까지 188년은 대부여의 역사 시대예요. 그러나 단군조선의 기본적인 시스템인 삼신제도로, 삼한, 삼조선으로 굴러갔기 때문에 대부여 역사 188년도 단군조선에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44세 구물 단군은 삼신 영고제를 올리고 삼육대례를 올렸다고 합니다.

 

- 46세 보을 단군

46세 보을 단군 때 기후가 번조선 궁에 진입해서 내가 번조선 왕이요!” 했습니다. 그러자 단군이 그래 네가 한번 해 봐라.” 하고 인정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기씨의 후손 가운데 여섯 사람이 번조선의 왕이 됩니다. 기후가 70세 왕이고 그 다음 기욱, 기석, 기윤, 기비, 그리고 마지막 75세 왕이 기준(준왕)입니다.

 

그런데 기자의 후손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번조선의 여섯 왕 때문에 조선 전체를 기자조선이라고 얘기한다는 건 우습잖아요. 기자의 후손 여섯이 왕으로 있었으니 기자조선이다, 과연 그렇게 이야기할 수가 있겠느냐 말입니다. 또 위만이 준왕을 쫓아내고 번조선을 차지해서 손자 우거 대까지 이어진 것을 위만조선이라 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 47세 고열가 단군

마지막 47세 고열가 단군은 단군왕검의 사당을 백악산에다 세우고, 유사有司로 하여금 사계절마다 제사를 지내게 하셨어요. 단군은 1년에 한 번 제사에 참석하셨습니다.

 

이 고열가 단군은 서력전 238년 계해년에, “나는 도저히 나라를 경영할 수가 없다. 이제 그만 물러나겠다.” 하고 나라 살림을 맡은 오가의 족장들에게 국권을 넘기고서 산으로 들어가셨어요. 이후 6년 공화정 시대가 열립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전 해인 임술년(서력전 239)에 해모수가 웅심산에서 나라를 세우고 북부여라 했습니다. 그러나 단군의 옥새를 전수받는 데까지는 약 7년의 세월이 걸렸어요.

 

그리하여 서력전 232년에 본격적으로 단군조선을 계승한 북부여 왕조 시대가 정통 역사 시대로 출범하게 됩니다.

 

- 안경전 종도사님, 2015년 환단고기 북콘서트(강화도편) 말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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