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 역사 스토리텔러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물 가까운 곳에 터를 잡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 사는 곳 가까이에서는 작은 연못부터 강과 호수, 바다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 물을 어떻게 바라봤을까요? 아마도 생활 터전으로 삼아, 민물은 식수로 사용했을 것이고 물속에 있는 풍부한 먹거리를 얻기 위한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깊은 물로 들어가고자 아주 오랜 옛날부터 배 만들기를 빈번히 시도하고 연구하였습니다. 인류는 먼 과거의 시간 이래로 여러 가지의 배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선조들과 배 이야기를 같이 해 볼까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가장 오래된 배’ 하면 이집트나 중동 지역을 주로 떠올리지만, 현존하는 유물로 가장 오래된 배는 대한민국에 있습니다.
‘정글의 법칙’에서도 하지 못한 배 만들기
‘정글의 법칙’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오지에 가서 생존하는 것이 주 내용인데, 강물을 건너거나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 뗏목을 만드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나무를 베어서 배를 만드는 장면은 보지 못했습니다. 출연자들이 먹거리를 구해 당장 배고픔을 해결하는 내용이 중심이다 보니 ‘배 만들기’ 같은 고된 노동과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제는 못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전문적인 연장과 도구 없이 손칼 몇 개 가지고는 불가능한 작업입니다.
배 만들기가 정말 힘든 일일까? 정말 힘든 일입니다! 비봉리 목선은 통나무를 잘라서 사람이 탈 공간을 파내 만든 배였습니다. 배를 만들 수 있는 목재를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습니다. 아름드리나무 베어 내기는 가장 큰 난관입니다. 특히, 8천 년 전 비봉리 목선이 만들어졌던 시기는 금속 도구가 없던 시절(신석기 시대)입니다. 돌 도구만 가지고 사람 몸통보다 두터운 나무를 베어 낸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마디로 ‘미션 임파서블’입니다. 어찌어찌해서 나무를 베었다면 물가로 큰 나무를 옮겨야 합니다. 2~3미터 길이의 사람 몸통 두께만 한 나무 무게는 한두 사람이 쉽게 들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을 써야 합니다. 숲에서 물가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까요?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더 힘들겠죠. 큰 나무를 물가로 가져오면 그 다음부터는 도구 혹은 연장과의 싸움입니다. 돌 도구만으로 나무의 절반을 들어내고 다시 사람이 탈 수 있는 공간을 파내야 합니다.
8천 년 전 배의 가치
잠시 생각해 봐도 배 만들기는 아주 고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이 어려운 일을 8천 년 전 선조들께서 해 내셨습니다. 강철 도끼나 끌, 대패 같은 금속 도구도 없이 말입니다. 8천 년 전 배 만들기는 그 당시 선조들의 지혜와 수준 높은 기술(High Technology)이 응축된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선조들이 그 당시 어떤 생활을 했는지 보여 주는 기록물(Time stamp)입니다.
비봉리 목선은 전문 용어로 환목선丸木船 혹은 독목주獨木舟라고 하는데요. 굵고 긴 나무를 통째로 배로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봉리 목선은 200년 된 소나무로 만들었습니다. 수령 2백 년 된 나무를 잘라서 4~5미터가 넘는 배를 만들었습니다. 거대한 소나무를 돌 도구로 베어 내고 다듬어 냈을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그분들의 지혜를 만나게 됩니다.
나무는 생각보다 가공하기가 아주 까다롭습니다. 특히 굳은 옹이 부분을 가공하려면 금속 도구를 가지고도 생각대로 다듬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선조들께서는 불을 사용하여 목재를 가공하였습니다. 비봉리 목선에는 ‘초흔焦痕(불에 태운 자국)’이 발견됩니다. 가공하려는 부분을 불로 태우면, 탄 부분이 부스러지기 쉬워서 훨씬 수월하게 나무를 다룰 수 있습니다. 지금도 나무 판재를 휘거나 가공하기 위해서 불을 사용합니다. 특히 특정 부분만 잘 태우면 쉽게 부스러뜨릴 수 있습니다. 어렵게 손으로 깍아 내는 수고를 덜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정교하게 불을 놓을 수 없기에 돌을 뜨겁게 가열하여 나무 위에 올려놓아 부분적으로 태우는 방법을 사용했을까요? 불을 사용해서 통나무 속을 U자형으로 파내 사람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고 배 밑바닥과 외형을 잡았다고 추정합니다. 이렇게 배가 완성됩니다. 추측하건대 거대한 소나무를 베어낼 때도 불을 사용했다고 보여집니다. 지금 현대 목공 기술보다는 어설프고 세련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나무를 다루는 지혜와 기술은 이미 8천 년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금보다는 많이 느렸겠지만, 차근차근 지식을 축적하고 지혜와 노력을 모아 배를 완성시켜 내고 그 흔적을 우리에게 남겨 주신 선조들께 깊은 고마움이 스며 납니다.
분업적 조직 사회
기술 이야기에 덧붙여서 8천 년 전 배 만들기가 알려 주는 다른 면모를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나무를 다루는 지혜, 배를 만드는 기술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시야를 조금 더 확대해서, 배를 만드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200년 된 소나무라면 둘레만 해도 대충 어른 둘이 마주 안아야 손을 잡을 정도였을 겁니다. 비봉리 목선에서 가장 두터운 부분의 폭이 62cm였으니 적어도 지름이 80~90cm 정도에 길이가 5m는 되어야 배를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하면, 나무 무게가 얼마나 될까요? 어떤 TV 프로에서 150년 된 소나무를 옮기는데 무게가 22톤이라는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200년 된 소나무 5m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도저히 한두 사람이 옮길 수 있는 무게는 아닙니다. 배를 만들 목재를 옮기는 데 적어도 수십 명이 동원됐으리라 추측합니다. 그런데, 통나무 하나로 실패하지 않고 배 한 척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배는 한 척만 만들었을까요? 이런저런 상황을 유추해 볼 때 마을 단위 노동력이 배 만드는 작업에 투입되었다고 봅니다. 그 당시 한 마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온 마을 사람들이 총동원되어야 할 대규모 선박 건조 사업이었습니다.
물가에 목재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이제 배를 만들어야 하는데, 연장이 필요합니다. 그제서야 돌 도구 연장들을 만들기 시작했을까요? 적당한 돌을 채취하고, 돌을 깨거나 갈아 내고, 다시 나무로 만든 손잡이에 고정시키는 일련의 작업들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목재를 옮기는 노동과는 별개로 연장을 준비하는 작업은 분업적으로 병행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목재를 선별하고 잘라 내서 운반하고, 연장을 마련하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봐도, 배 만들기는 조직화된 집단 사회를 그려볼 수 있게 합니다. 이렇게 8천 년 전 비봉리에서 발견된 통나무배는 단순한 배의 파편이나 나무 조각이 아니라 우리에게 조직화된 집단의 체계적인 활동을 짐작케 하는 귀중한 증거물입니다.
노를 저어 배를 조정하다
8천 년 전 배 만드는 기술자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 사람이 타도 물에 뜨는 배를 만들었다면 그 다음 고민은 배를 조정하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는 곳으로 갔다가 다시 뭍으로 돌아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배를 움직이게 하는 힘, 추진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얕은 물가라면 긴 장대로 바닥을 밀어서 원하는 방향으로 배를 나아가게 할 수 있습니다. 강을 건너는 것이라면 양쪽 뭍에 매어 둔 밧줄을 당겨서 오고 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호수, 강, 바다처럼 깊은 물에서는 장대나 밧줄로 건너기는 어렵습니다. 필요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지혜를 모으게 합니다. 사람이 헤엄칠 때 손과 발로 물을 밀어 내듯이, 오리 같은 새들이 물갈퀴가 달린 오리발로 물을 밀어 내듯이 ‘노’라는 도구는 자연스럽게 고안되고 발명되었을 것입니다. 비봉리 목선은 4~5미터 길이의 배인데, 적어도 4~6명이 노를 저었다고 추측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호흡을 맞춰 노를 저으면 거친 바다를 헤쳐 나가기도 훨씬 쉬웠을 것입니다.
물 위에서 방향을 가늠하다
물 위에 배를 띄우고 노를 장착하면, 물 위에서 방향을 잡고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항법”이 필요해집니다. 비봉리 목선이 발견된 곳은 8천 년 전 바다와 육지가 인접했던 곳입니다. 바다나 넓은 호수 한가운데서 배를 타고 있다면, 더구나 한밤중에 무사히 뭍에 도착하려면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할까요? 물론 나침반은 없던 시절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상 사람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방향을 잡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려면 오랫동안 자연을 관찰하여 지식이 축적되어야 합니다. 정말 고맙게도 북극성과 북두칠성은 깜깜한 밤하늘에 오랜 세월 변함없이 북쪽을 알려 주고, 해는 떠오르면서 언제나 변함없이 동쪽을 알려 주며 해가 지면서 서쪽을 알려 줍니다.
8천 년 전 선조들은 주변을 유심히 살피고 기억했습니다. 산의 모양, 해변의 모양, 바위의 위치, 숲의 위치를 기억합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해를 보고, 해가 지면 밤하늘의 달과 별을 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살펴온 해, 달, 별의 운행 규칙을 기억합니다. 이렇게 천지 자연을 보고 배워 자연스럽게 방향(방위)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었을 것입니다. 나침반도 등대도 없던 시절, 8천 년 전 선조들은 바다 위에서 하늘과 땅을 의지해 방향을 가늠하여 배를 몰고 물고기를 잡아 생활했습니다. 태고 시절부터 이 땅에 세워진 수많은 고인돌에 별자리가 새겨져 전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늘과 땅을 섬기고 그 안에서 삶을 영위했기에, 천지 부모 그리고 사람이라는 사상(천지인天地人 사상) 혹은 신앙(삼신三神 신앙)이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었을지 추측해 봅니다.
8천년 전 항법을 체득하다
“항법: navigation , sailing , 航法
선박을 출발지에서 목적하는 곳까지 안전하고 가능하면 빠르게 도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지식과 기술, 방법 등을 말한다.”
8천 년 전에 뱃사람들의 항법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초적인 몇 가지 항법을 사용했다고 봅니다.
항해 중에 중요한 목표를 육안으로 확인함으로서 목적지와 본선의 관계 위치를 알아내거나, 연안(해안) 가까이 거리를 유지하며 해안을 따라서 항해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또 항해 중에 해와 달, 별과 같은 천체를 관측하여, 그 관측 값과 관측한 시점에 따라 현재 위치와 방향을 가늠하는 방법을 사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항법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에 어렵게 생각되겠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항법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버스 정류장 혹은 전철역을 찾고 학교나 회사에 출근하고 마트나 약국을 찾아가는 모든 활동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항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주변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원하는 목적지를 찾아가는 항법을 구사합니다. 특히 길에는 각종 표지판과 건물의 간판들이 우리가 희망하는 목적지를 찾을 수 있도록 참고물 역할을 해 줍니다.
하지만, 바다라는 공간은 방향만 가늠해서 안전할 수 없는 곳입니다. 조수 간만의 차로 인해서 연안은 물의 깊이가 주기적으로 달라집니다. 눈에 잘 안 보이지만 ‘조류潮流’라는 것이 있습니다. 조류가 힘들이지 않고 배를 밀어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배를 떠내려 보내기도 합니다. 수면 아래에 도사리고 있는 암초와 작은 바위섬들은 조류와 합작하여 배를 위험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물의 흐름은 시간에 따라 주기적으로 변하고 날씨에 따라 강약이 달라집니다. ‘물길을 안다’는 것은 물의 흐름과 변화를 기억하고 이용할 줄 안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우리 선조들은 끊임없이 배를 만들고 깊은 물로 나아갔다고 생각됩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 내고 ‘항법’을 체득해 냈습니다. 그 덕분에 울산 바다에서는 거대한 고래를 사냥했고, 멀리 있는 섬들까지 사람이 갈 수 있었으며, 일본 열도까지 넘어가 날카로운 도구 ‘흑요석’을 싣고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비봉리 목선은 이렇게 8천 년 전 선조들의 도전적인 삶을 엿보게 해 줍니다.
‘신석기’라는 단어에 매몰되어 8천 년 전 사람들을 미개인으로 치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8천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미개인이나 원시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비봉리 목선을 통해서 그 당시 사람들의 놀라운 지혜와 수준 높았던 기술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늘땅을 의지해서 더불어 살았던 선조들의 정신세계를 조심스럽게 추측해 볼 수 있었습니다. 8천 년 전 비봉리 목선을 만들고 바다를 누비던 사람들은 지혜로웠으며 높은 수준의 기술을 축적했던 자랑스러운 선조들입니다.
배와 관련된 선사 고대 시대의 역사를 살펴보면 너무도 많은 이야깃거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7천7백 년 전 만들어진 인류 최초의 판재형 죽변리 목선, 일본 열도로 기마 군단을 실어 날랐던 가야의 배, 22담로를 개척하여 동아시아의 로마를 재현했던 백제의 배, 황해의 제왕 장보고가 탔을 신라의 배. 수많은 깨우침과 역사 진실을 가르쳐 주는 한민족의 해양개척사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기대하며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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