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반짝이는 별을 보거든...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혹시 지갑에 일만 원권 지폐를 가지고 있다면 꺼내서 천문도를 찾아보기 바란다. 세종대왕이 그려진 뒷면에 천체 관측 기구가 그려져 있고 그 배경을 별자리가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번은 들어 봤을 이 천문도의 이름은 ‘천상열차분야지도’로서 동아시아에서 최고로 정밀한 별자리 그림이다. 무심코 지갑 속에 넣어 다니고 있지만 알고 보면 사람들이 저마다 우주의 그림을 휴대하고 다니는 것이다. 태극기에 우주의 이치를 그려 넣었다면 만 원의 지폐 속에는 별자리를 담았다. 우리가 주머니에 우주를 들고 다니게 된 것은 한민족이 오랜 세월동안 별과 친하게 지내온 결과물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름이 좀 어렵다. 간단하게 말하면 천문도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름에서 끝에 ‘지도’라는 것은 ‘~하는 그림’이란 뜻이다. 천상天象이란 하늘의 모습을 의미한다. 현대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천문현상天文現象의 줄임 말이다. 열차列次란 하늘 별자리를 구획으로 나누어 펼쳐 놓았다는 의미이고, 분야分野라는 것은 하늘 구획을 땅의 특정 지역과 대비시키는 것을 말한다.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 공간을 방위와 방향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3차원 우주 공간에 퍼져 있는 별들을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지상의 방위와 방향에 맞게 2차원 평면에 펼쳐 놓은 것이 천문도이다. 북극성을 기준으로 삼아 관측할 수 있는 별자리들을 12구역으로 나누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란 조선 백성들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지침서로서 ‘표준 천문도’였다. 이 표준 천문도에 담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보기로 한다.
분야설分野說
목성은 공전 주기가 약 12년(정확히는 11.86년)으로 매년 천구상의 황도 둘레를 약 30도씩 운행한다. 이 목성의 12년 1주천 주기를 12등분 한 것을 ‘십이차 분야설’이라 한다. 이 12차는 천상의 공간을 구획하는 분야론으로 전개되었으며 지구로 확장되어 12주, 12국에 배속되었다. 『환단고기』의 ‘12환국’과 동학의 ‘12제국’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복잡한 듯 간단한 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에서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모든 별자리가 그려졌다. 그래서 ‘전천천문도全天天文圖’라고 분류한다. 돌에 새긴 석각본, 나무에 새긴 목판본, 종이에 찍은 필사본으로 제작되어 조선 백성들에게 다양하게 보급되었다. 별자리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별은 총 1,467개이고 별자리는 모두 295개이다.
이 천문도를 언뜻 보면 아주 복잡하다. 하지만 관심을 갖고 유심히 들여다보면 의외로 쉽게 다가온다. 먼저, 이 천문도에서 네 개의 원을 구별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가장 바깥쪽 첫 번째 큰 원을 외규外規라고 부른다. 바깥쪽에서 중심부 쪽으로 시선을 옮기다 보면 중간 크기 원이 2개가 겹쳐진 채로 보인다. 중심 쪽에 있는 원은 천구(밤하늘)의 적도이다. 그리고 중심이 어긋난 원은 태양이 1년 동안 별자리를 지나는 경로를 나타내는 황도라고 한다. 네 번째로 가장 중심부에 있는 작은 원 안쪽이 ‘자미원紫微垣’이라고 부르는 내규內規이다. 이 4개의 원이 보이기 시작하면, 자미원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방사선들도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황도 근처에 배열된 28개의 대표적인 별자리를 중심으로 구획을 나눈 것이다. 자미원을 중심으로 360도를 28개의 영역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방사선으로 뻗어나간 선의 각도가 일정하지 않아 더욱 복잡해 보인다. 대표적인 별자리를 두고 그 크기만큼 나누었기 때문에 어떤 구획은 폭이 넓고 어떤 구획은 좁다. 이렇게 28개의 대표적인 별자리를 28수宿라고 한다.
하늘의 명당을 땅에 내린 경복궁
풍수란 하늘의 명당과 닮은 땅의 명당을 찾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하늘은 어디가 명당일까? 북극성과 북두칠성에는 온 우주를 다스리는 하늘의 제왕(천제天帝 혹은 옥황상제玉皇上帝)이 머문다고 믿었다. 그래서 북극성과 북두칠성이 있는 별자리 영역을 명당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가장 안쪽 원 내규內規인 ‘자미원紫微垣’ 혹은 ‘자미궁紫微宮’이 최고의 명당이다.
하늘의 28개의 별자리를 땅에 적용한 내용
자미원에 기거하는 하늘의 제왕이 있으면 하늘의 신하도 있고 하늘의 백성도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하늘 임금 아래에서 우주 정치를 수행하는 정부기관이 있는 곳을 ‘태미원’이라 하며, 하늘 백성들이 사는 곳을 ‘천시원’이라고 한다. 이렇게 자미원, 태미원, 천시원은 삼원三垣이라 하며, 뒤에서 이야기할 28수와 더불어 동아시아 천문 사상의 특징이다. 즉 동아시아 천문도의 특징은 3원 28수이다. 조선을 만든 사람들은 하늘의 삼원을 지상에 배치시켰는데 자미원은 경복궁, 태미원은 육조거리로 지금의 광화문 광장에 해당한다. 육조 거리엔 중앙관청인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이외에 조선 시대 국가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의정부를 비롯하여 서울시청에 해당하는 한성부, 감사원격인 사헌부 외에 정부 중앙 관청인 6조가 있었다. 천시원은 현대적인 의미로 백화점과 쇼핑센터가 있어서 종로의 시전이 바로 천시원에 해당한다 하겠다.
일월오봉병(도)日月五峯屛(圖)
자미원에 있는 ‘옥황상제’가 북두칠성이라는 수레를 타고 1년 동안 온 우주를 돌며 다스리는 것을 칠정七政이라고 한다. 옥황상제는 우주를 다스리는 통치자이자 신神이다. 북두칠성은 상제의 명령을 받아 4계절마다 각 7수(28수 중 7별자리)를 지휘한다. 각 7수는 북두칠성의 지휘 아래 맡은 바 영역에서 정해진 시기(계절)에 맞게 활동을 한다. 7수의 활동은 다시 온 우주에 영향을 미쳐서 우리가 속한 태양계의 일월과 오행성(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까지 이르게 된다. 일월과 오행성은 7수의 지휘 아래 각기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이 땅의 만물에 낳고 기르고 결실시키고 죽이는 작용을 한다. 이처럼 자미원에 있는 상제(혹은 천제)가 온 우주를 다스리듯 천제의 대행자인 임금은 하늘로부터 인간 세상의 통치권을 부여받았기에 하늘을 본받아 이 땅의 백성들을 다스린다. 이것이 천상의 칠정을 본받아 임금이 인간 세상에 펼치는 정치政治이다. 그래서 역대 제왕들은 하늘의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관청을 설치하고 1년 365일 일월 오행성의 움직임과 별자리들을 관찰하고 기록하게 했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통치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자미원에 계신 상제의 뜻을 알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하늘(천제)은 말도 몸짓도 없기에 임금께서는 하늘의 기색(상象)을 살펴서라도 천심을 알고자 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관상감觀象監이라는 관청을 두어 천문을 관측하고 기록하여 임금님에게 주요 사항을 보고하게 했다. 이렇게 천문을 관측하고 그 기록과 역량이 축적되면서 달력을 만들어 냈고 이는 어로, 수렵, 목축, 채취, 농사 등 백성들의 생활 전반에 도움을 주게 되었다. 앞서 소개한 여러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 하늘의 이치대로 사람들이 살아야 했기 때문에 천문도를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자 했다. 이것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들었던 이유인 것이다.
고구려의 천문도
고구려 고분을 만들 때 방은 네모나게 천장은 둥글게 했으며 천장에 별자리를 그렸다. 이것은 ‘개천설’이라는 우주관이 투영된 무덤 건축 방식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고구려 고분들 중에 별자리가 그려진 고분은 25기이며 별의 개수는 총 800개에 육박한다고 한다.(김일권,『고구려별자리와 신화』,2009) 서기 357년에 만든 안악3호분에서 천장 별자리 벽화가 처음 발견되었다. 중요한 것은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별의 밝기에 따라 별의 크기를 달리 그렸듯이 고구려 벽화에서도 역시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덕흥리 고분의 북두칠성은 실제 별 밝기에 비례하여 그렸으며, 육안으로 구별하기 힘든 8번째 보성까지 그려 놓았다. 서기 590년경에 축조된 진파리 4호분에서는 전체 하늘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전천천문도가 천장 판석에서 발견되었다. 북한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진파리 4호분의 별들은 6등급으로 구분하여 밝기를 표시했으며 총 136개의 별이 그려졌다고 한다. 중국 문헌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을 다 그린 전천천문도가 등장하는 시기는 8세기 정도이지만 고구려에서는 이미 6세기에 전천천문도가 고분벽화로 등장한다. 고구려의 전천 천문도는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발견되었다. 일본 나라(奈良)현 아스카 지역에서 1998년에 발견된 키토라 고분에서 고구려 천문도가 발견되었다. 무덤 천장에는 해와 달 그리고 28수의 별들이 고구려 무덤 양식대로 빼곡히 그려졌고, 진파리 4호분 천장 별자리처럼 별들을 금박金箔으로 그렸다.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유사한 기토라 무덤이 만들어진 시기는 7세기이지만 별의 관측 장소는 북위 39도 평야 지역이며 관측 시기는 기원전 300년에서 기원후 300년 사이로 밝혀졌다.
신라와 백제 그리고 고려의 별자리
고구려, 백제, 신라 중에서 천문도를 남기고 있는 나라는 현재로선 고구려가 유일하다 하겠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세 나라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천문 관측과 기록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일식 67회, 혜성 59회, 유성과 운석 41회, 월식 20회 등을 비롯한 총 225회 이상의 천문관측 기록이 남아 있다.
신라와 백제는 별자리 그림이 전해 내려오지 않고 있지만 천문 현상 기록 중에 별의 명칭이나 별자리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정밀하게 별을 관측했으리라 여겨진다. 신라는 692년 당나라에 다녀온 고승 도승이 천문도를 왕에게 바쳤다는 기록으로 보아 천문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첨성대가 있던 신라이고 보면 천문 관측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최근엔 경주가 하늘의 별자리 모양으로 도시를 만들었음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기도 해서 옛 사람들은 하늘의 모습을 땅에 구현하는 개념을 모두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천문도에 관한 백제의 기록은 삼국사기에는 없다. 그러나 일본서기의 기록을 보면 602년 백제 승려 관륵이 와서 역법, 천문지리, 둔갑술에 관한 책을 바쳤다고 했다. 3개의 책은 다 천문에 관한 책이기 때문에 백제에 천문도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의 천문학
고려 시대의 천문 관측 기록은 엄청나게 많이 남아 있다. 정밀한 관측 기계가 아니면 관찰이 어려운 천문 현상까지 남기고 있다. 고려는 다양한 국가 천문 기관에서 30명에 가까운 천문 학자와 관리들이 활동했다. 고려 왕조 475년 동안 천문 관측 기록은 〈고려사〉, 〈천문지〉, 〈역지〉, 〈오행지〉 등에 집약되어 있다. 무려 6,500건에 달하는 자연 현상에 대한 기록 중 일식 138회, 혜성 87회 같은 비교적 쉬운 관측에서부터 태양 흑점을 관측한 기록도 38회나 있다고 한다. 한 예로 1151년 3월 2일에 ‘일중유흑자日中有黑子’ 즉, ‘태양 속에 검은 것이 있다.’고 기록하면서 ‘그 크기가 계란만 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자세한 별자리를 그린 천문도는 아직 발견되고 있지 않다. 다만 〈고려사〉에 오윤부伍允孚가 천문도를 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 초기 기록에서 평양에 천문도가 있다고 한 점을 고려하면 고구려 천문도를 고려가 이어받아서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비록 남아있는 정교한 천문도는 없지만 고구려의 별자리 특징을 볼 수 있는 것이 고려 희종의 무덤 천장에 있는 별자리 그림이다. 가운데 북두칠성이 있고 주변에 28수를 그려 넣었으며 태양과 달도 그렸다. 무엇보다 고분에 그려진 별자리에는 북극성과 두 개의 별이 조합된 북극삼성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북극삼성은 고구려 때부터 이어진 특징이다. 동시대에 중국 천문도는 북극오성이 유행이었다. 집안시 씨름무덤(각저총), 춤무덤(무용총), 통구 사신총, 평양시 진파리 4호분 등 고구려 벽화에서 북극삼성이 보인다. 또 다른 고구려 벽화의 별자리 전통은 일월, 북두칠성, 그리고 남두육성의 조합이다. 동서쪽에 그려진 해와 달에는 삼족오와 두꺼비가 그려져 있고 북쪽에는 북두칠성 남쪽에는 남두육성이 자리하고 있다.
고구려부터 고려로 전해진 독특한 별자리 체계는 또 있다. 고려로 계승된 대표적인 특징은 카시오페아 별자리이다. 주변 국가 천문도에서는 W모양의 카시오페아 별자리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 고분에서는 W모양의 별자리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고려 석관에도 북두칠성과 함께 짝으로 W모양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고구려에 천문과학을 전수한 고조선
고조선 영역에는 수많은 고인돌이 있다. 그 중에는 별자리가 그려진 고인돌이 많이 발견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인돌에 새겨진 구멍들을 별자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고조선 때부터 별자리를 관측했음을 확인시켜주는 결정적인 유물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고인돌에 별자리로 보이는 홈을 적게는 1~2개에서 많게는 400개까지 새긴 것들이 나타난 것이다.
1978년 충북 청원군 아득이 마을에서 발견된 고인돌 유적에서 크고 작은 별이 60여 개 이상 새겨진 돌판이 발견되었다. 학자들은 아득이 돌판의 점들이 진짜 별자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진파리 4호 무덤(6세기경)의 별자리와 기원전 15세기 지석리 고인돌의 별자리와 기원전 5세기 북극성 주변의 별들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현해서 서로 비교해 보았다. 그랬더니 아득이 돌판의 별 배치가 다른 예들과 아주 유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아득이 돌판은 진짜 천문도였다. 더 놀라운 것은 돌판에 새겨진 별들의 지름이 별의 밝기에 따라 다르다는 점이다. 별이 밝으면 크게, 흐리면 작게 표시하는 고구려 천문학 전통이 이미 고대 조선 시대부터 시작되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원본을 만든 고구려인들은 아득이 돌판을 만들었던 고조선으로부터 세계 최초의 천문 관측 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수천 년의 천문 관측 기술과 역량이 드러난 걸작으로 우리 민족의 자랑거리이자, 세계의 자랑거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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