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 천안구성도장
저는 1944년 일제 시대에 천안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천안에서 살고 있는 유○○ 도생입니다. 제가 태어나고 1년 후 해방이 되어 기억은 없지만 선친께서 일제 시대의 혹독한 나라 잃은 어려움과 설움, 고난을 겪다 보니 일본을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생각에서 저의 이름에 이길 승勝 자를 넣어서 지었다고 합니다. 출생신고를 할 때 일본인 호적계가 왜 이길 승 자를 넣어서 이름을 지었느냐고 추궁을 해서 일본이 전쟁(태평양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뜻이라고 둘러댔더니 일본인이 선친의 본심도 모르고 좋아했다고 합니다. 선친의 염원대로 다행히 1945년에 해방이 되어 저는 일제 시대의 서러움은 당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해방 후 남북 분단이 되고 6.25전쟁을 어린 나이에 겪게 되었으나 저를 비롯한 가족들은 별 탈 없이 모든 고난을 이겨냈고, 저도 전쟁 중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963년에 천안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두 아들을 낳고 행복한 가정생활이 이루어지는 듯했으나 남편이 50세도 못 넘긴 중년의 나이에 지병으로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갖은 고생을 하며 자식 양육과 교육에 힘쓴 결과, 다행히 두 아들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에 안착하고 결혼해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집안이 대대로 단명하는 편이라 두 아들의 건강도 염려가 되고 혼자 살면서 느끼는 공허함과 괴로움도 견뎌내기 위해 저는 불교에 귀의하였습니다. 마음공부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배우고 두 아들의 무병장수를 축원하면서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무엇이든 공부하면 어설프게 하는 성격이 아니고 적극적인 정신과 봉사하는 마음가짐이 있던 터라 불교 교리 공부를 통해 법사 자격증도 받았고 공양주 보살 생활도 하면서 여러 가지 부처님과 보살님들의 가피加被를 받아 본 사실도 여러 번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 신앙과 공부에 심취할수록 마음 한구석에는 무언가 허전함과 부족함이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 중에 미륵부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중생구제를 위한 일을 하고 가셨다는 증산도를 접할 기회가 있어서 모악산 금산사에도 가 보고 구릿골에도 가 본 사실이 있습니다. 증산도를 지켜보니 불교나 기독교 등 기존 종단과는 달리 젊은 학생들과 청년층이 많고 신도 층도 여자보다는 남자가 많은 것이 흥미롭고 특이하게 느껴졌습니다. 대순진리회는 살펴보니 너무 모순과 불합리한 점이 많아서 사이비라는 느낌이 강해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증산도는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 언젠가는 꼭 가 봐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던 차에 상생방송을 보면서 인연이 있다면 꼭 가 보고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천안에서 열린 건강세미나에 참석하여 지금의 인도자인 유 ○○ 포감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조상이 같은 본관과 성씨이고 증산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뭔가 제게 인연이 있고 제가 갈구하던 목적을 찾을 수 있는 인연줄이 되겠다는 강한 확신이 와서 도장 방문을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도장 방문을 약속한 전날 밤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좋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에 절의 대웅전 앞에 키도 엄청 크고 둘레도 몇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가 갑자기 빙글빙글 돌더니 쓰러져 넘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면서 천상에서 이미 돌아가신 외가 가까운 친척 세 분이 가마 비슷한 탈것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다음 장면은 앉은 상태로 공중에 떠서 날아가는데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세 마리의 시커먼 개 같은 짐승이 나를 쫓아와 허리를 물어서 손으로 뿌리쳐 떨쳐 내고 잘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습니다. 신기하고 기이한 꿈이라 해석이 잘 되지 않았는데 도장에 방문하여 도담을 나누면서 여러 가지 의문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도장에서 도담과 상담을 받으면서 불교의 총 결론이 미륵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말법시대에 오신다는 것이며 그 미륵부처님이 우주의 주재자이자 통치자 하느님이신 증산상제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분이 이미 146년 전에 조선 땅에 강세하시어 1901년부터 1909년까지 천지공사를 통해 말법시대에 중생구제의 프로그램을 이미 짜 놓고 가셨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21일 정성 수행을 하면서 특히 좋았던 것은 조상님을 지극히 모시고 받드는 천도식과 우리 전통 문화를 계승한 치성 지내는 모습이 너무나도 경건하고 우리 문화와 정신 양식에 합치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비록 노년의 나이이지만 공부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증산도를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팔관법 교리 공부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입도 정성수행과 함께 해 왔습니다. 증산도 공부를 통해 불교에서 항상 2% 부족했던 목마른 진리 갈증과 공허함이 해결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늦게 들어온 만큼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수행을 통해 선지후각하여 깨달음을 열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도생이 되겠습니다. 보은!
© 월간개벽. All rights reserved.
'증산도 신앙 > 입도 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도사님의 열정에 결심한 입도 (1) | 2024.05.02 |
---|---|
인연을 위한 보이지 않는 이끌림 (0) | 2024.04.25 |
상생방송으로 대순과 증산도의 차이를 확인하다 (0) | 2024.04.19 |
어릴 적 봉청수의 정성으로 진짜 진리를 만나다 (0) | 2024.04.17 |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큰 사랑에 감동을 하고 (0) | 2024.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