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환단학회 2016년 춘계학술대회에서 안경전 종도사님의 강연 말씀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편집자註
신선 발귀리가 소도 제천행사를 보면서, 동방문화의 원형 역사정신을 이렇게 찬양하는 시로 지어서 노래로 불렀습니다. 이분의 마음이 마치 강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흐르는 대로 한번 따라가 보면, 우주관과 인간관의 원형, 우리 인간 존재에 대해서 아주 큰 진리 깨달음의 틀을 아주 쉽게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일기극大一其極이 시명양기是名良氣라
첫 구절이 ‘대일기극大一其極이 시명양기是名良氣라’, 말할 수 없이 큰 하나! 대일이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존재의 근원입니다. 그걸 ‘한없이 큰 하나’라고 하고 이것을 찬양합니다. 우주 만유 존재자의,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신과 같은 것, 우주 만유 생명의 어떤 근원 그 지극함이여, 대일기극大一其極이여. 시명양기是名良氣라, 이름하여 ‘양기良氣’라 한다. 양良은 양지良知, 양덕良德이라고 할 때, ‘아름답다, 좋다, 선하다’ 등 좋은 뜻이 참 많습니다.
이것이 다시 근대사의 출발점 동학에서 위대한 선언인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 이 여덟 글자에 나타납니다. 선천 팔자 아무리 좋게 타고났어도 이번 개벽으로 다 무너진다는 겁니다. 후천 팔자, 지기금지원위대강, 가을 우주의 지기사상至氣思想으로 다시 나타납니다. 그러나 중국 중심의 성리학 이기론理氣論 때문에, 우주광명 원형문화의 우주생명 사상이 제대로 해석이 안 되고 있습니다.
무유이혼無有而混하고 허조이묘虛粗而妙라
발귀리의 송가에서 ‘무유이혼無有而混하고 허조이묘虛粗而妙라’ 즉 ‘무와 유가 섞여 있다, 구분할 수가 없다, 하나다, 일체다, 무와 유는 둘로 나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도 형상, 육신이 있고, 이것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잖아요? 공간, 허공은 있지만 이것은 무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허공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움직일 수가 있고, 사물이 이동할 수가 있어요. 공간의 실상이 무와 유의 문제인데, 이 무와 유는 일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 유를 하나의 현상세계로 보고 이 무, 유가 존재하는 근거를 허로 보는 것이 좋지 않으냐? 허조이묘虛粗而妙, 허, 텅 빔. 거기서 나타난 조粗. 조라는 건 조박糟粕한 것인데, 싹을 깔 때 보면 거친 것, 성근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대우주의 별자리 세계도 조박한 겁니다.
증산도 『도전』을 보면, 상제님께서 “빛이 나는 데로 가자. 빛나는 데로 가자.” 하시고, 다시 “눈을 떠라.” 하시니까 구릿골에 있던 집이 조화로 집째로 변산 꼭대기에 와 있는 거예요. 거기 있던 여러 사람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그러고서 하늘의 별을 보는데 “저 우주에 있는 모든 별들이 자갈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저 무수한 은하계가 우리 인간 중심으로 볼 때는 자갈과 같고 모래알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텅 빈 우주의 공간, 허의 실체는 아직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바 있지만 ‘모든 건 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궁극으로 비어 있는 이 ‘텅 빔’ 속에서, 조화의 근원 바탕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물이 쏟아져 나오는 겁니다. 여기서 조粗라는 것은 우주의 무수한 은하계, 지구 만물의 생명, 바다의 물고기, 아름다운 푸른 산하에 있는 꽃, 식물,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허조이묘라, 묘妙라는 건 오묘한 것인데, 이 우주가 나타나 있는 자체가 너무도 오묘하지 않습니까.
삼일기체三一其軆오 일삼기용一三其用이니
그다음에 이것들이 어떻게 존재하느냐 하는 법칙성을 얘기합니다. ‘삼일기체三一其軆오 일삼기용一三其用이니’, 여기서 체용론體用論이 나옵니다. 체라는 것은 본체, 용이라는 것은 작용 또는 현상으로도 말합니다. 어떤 사물의 근원세계와 현실세계로도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 우주의 문제에서 크게 보면, 우주의 근원이 되는 본체가 있습니다. 그걸 바탕으로 해서 우주가 벌여져 있습니다. 그런 의미의 본체와 현상, 또는 사물의 근원세계와 현상세계, 사물의 양극, 근원과 현실, 본체와 작용은 마치 우리 몸으로 보면 ‘몸과 몸짓의 관계’와 같습니다. 여기 이 몸통이 있고 몸짓이 나오잖아요. 수많은 몸짓이 나오는데 그 몸짓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삼일기체三一其軆오’, 삼은 일을 본체로 삼고, ‘일삼기용一三其用이니’, 일은 삼을 작용으로 삼습니다. ‘혼묘일환混妙一環이오 체용무기軆用無歧라.’ 무와 유 그 근원이 되는 우주의 텅 빈 허의 조화세계, 무궁한 조화의 이 텅 빈 허의 세계, 거기에서 나오는 조박한 우주의 현상계 허조虛粗. 그러니까 무와 유, 허와 조가 일환一環, 하나로써 일체가 되어 어우러져서 순환합니다. 환環이라는 것은 순환, 생성한다는 것입니다.
‘체용무기軆用無歧’라, 체와 용이라는 것은, 구분을 할 수 있을 뿐이지 갈라지는 게 아니다, 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최근에 보면 서양은 이원론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특히 신앙하는 사람이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이원론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체와 용은 둘이 아니고 갈라질 수 없습니다.
대허유광大虛有光하니 시신지상是神之像이오
그러면 궁극의 유와 무가 생성되고, 우주 만유가 태어나는 지극히 비어 있는 그 자리는 무엇인가? 거기는 누가 있다는 말인가?
‘대허유광大虛有光하니 시신지상是神之像이오.’ 대허大虛, 장대하게 거대하게 텅 비어 있는, 거대한 그 텅 빔 속에 광명이 열려 있나니, 이것이 바로 신의 모습, 신의 참모습입니다. 우리가 이걸 경구로 해석하면 ‘네 마음을 크게 비워라. 그러면 여기에 광명이 열리나니 이것이 신의 모습이다. 이것이 바로 너의 신성의 모습이다’ 이겁니다. ‘이 우주를 비추고도 남을 대광명이 네 몸과 마음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대기장존大氣長存하니 시신지화是神之化라
‘대기장존大氣長存하니 시신지화是神之化라.’ 이것은 소도제천 행사를 직접 보면서 대신선이 된 깨달음의 도통 경계를 고백한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이 우주와 하나가 되느냐? 어떻게 해야 불멸의 생명, 대신선이 될 수 있는가? 우주 조화의 세계, 그 바다를 걸어 다닐 수가 있는가?
지금 여기서 본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대기장존大氣長存하니 시신지화是神之化라’, 이 거대한 기운이 영원히 살아 있나니 이것이 바로 신의 조화다, 신의 손길이다, 신의 집이다, 신의 의존처다, 신의 생명 자체다라는 겁니다! 이 텅 빈 대우주의 허공 그 깊은 속에 누가 있느냐? 바로 신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신은 광명 그 자체입니다.
진명소원眞命所源이오 만법시생萬法是生이라
유·불·선·기독교의 영성문화와 신관이라든지 성령관에서, 또는 불가의 일심법이라든지 참선문화를 보면 아주 대단한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주역의 건곤乾坤이라든지 십익十翼에서 말하는 도교 또는 불가적인 심법, 사유 구조를 뜯어다가 해석한 여러 구절도 있습니다. 그 모든 가르침이 여기서 ‘진명소원眞命所源이오 만법시생萬法是生이다’ 이겁니다. 이 자리는 참된 영원한 생명이 발원하는 바요, 일어나는 곳입니다. 만법萬法이 여기서 생한다는 것입니다.
만법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법사상에 보면 우주 만유, 살아있는 대우주 자체도 법이고, 그것을 깨달은 성자들의 가르침, 부처님의 말씀이라든지 모든 성자들의 말씀, 삶 그 자체도 법입니다. ‘나는 길이요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법입니다. 깨달음의 법은 어떻게 우주생명과 하나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주 현상계의 법칙, 그 속에서 태어난 인간의 삶, 삶에 대한 가르침, 깨달음의 길, 도통법, 그 모든 법이 시생是生이다! 이것은 굉장히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진명소원眞命所源 만법시생萬法是生, 영원한 생명이 여기에서 발원하는 바요, 그리고 모든 동서고금의 법이 여기서 생합니다.
일월지자日月之子오 천신지충天神之衷이라
그래서 ‘일월지자日月之子오’, 현실세계에서 생명의 근원은 해와 달입니다. 태양이 한순간 멈추면 지구 생명계는 한순간에 다 없어집니다. 소멸됩니다. 바로 이 일월, 생명 현상의 1차 근원인 일월, 일월광명, 일월생명의 씨, 근원이란 말입니다.
‘천신지충天神之衷이라’. 여기서 신의 문제가 나오는데, 천신天神은 대표적으로 「삼신오제본기」에서 말하는 대우주의 통치자, 우주 정치의 주관자 삼신상제, 일상제를 말합니다. 여기서 천신은 『환단고기』 또는 우리 동방 문화의 정서로 보면 천지신명, 신의 마음자리입니다. 신명의 참마음입니다. 충衷이라는 것은 속마음, 참마음, 우주와 하나 된 일심 자리입니다.
이조이선以照以線하야 원각이능圓覺而能하며
전체적으로 한번 대략 묶으면서 끝내야 될 것 같아요. 여기 보면 ‘이조이선以照以線하야 원각이능圓覺而能하며’, 이조이선, 비춰 주는데 뭘 비춰 주느냐? 이 우주의 조화 바다를 양기良氣라 했고, 그것은 텅 빔의 세계이고, 거기에서 바로 유무가, 우주 현상계가 태어나는데 우리가 텅 빈 그 대허한 마음을 가지면 거기에서 우주광명이 열립니다. 그게 바로 신의 존재 모습입니다.
소도경전본훈에 담긴 깨달음
그러니까 우주의 생명의 조화 바다를 가리켜 ‘양기’ 또는 ‘대기大氣’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허조이묘의 ‘허虛’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또는 대허유광大虛有光이라 할 때 ‘대허大虛’라는 말을 씁니다.
그래서 ‘대일기극大一其極’이라고 할 때 우주의 살아 있는 모든 생명, 살아 있는 것, 존재자, 이 존재자들의 궁극의 근원,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궁극의 존재 근거, 그 존재 자체를 ‘대일’, ‘대허’, ‘신’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 어떤 때는 우주생명의 바다를 ‘양기’, ‘대기’로도 말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 신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정말로 재미있습니다. 이게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서 처음 듣는 깨달음의 담론입니다.
신선 발귀리의 깨달음
신선 발귀리의 깨달음의 대서사시는, 이 우주의 본성이 허, 텅 빔이고, 그 속에 무한의 생명이 출렁이고 있는데, 그것과 하나가 되려면 마음을 온전히 비워야 된다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그냥 적당히 비워서는 안 되고, 90%, 95%, 99%도 안 되고, 완전히 100%를 비워서 완전한 허의 경계, 자연과 진정한 하나가 될 때 깨달음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우주에는, ‘우주생명의 조화 바다 속에 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신은 삼신입니다. 신이, 궁극의 존재가 이 대우주 생명의 바다, 기의 바다 그 기운을 가지고서 우주 만유를 빚어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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