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한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위원)
2020년 초, 코로나-19는 누구도 모르게 스르륵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2021년 1월 초, 그동안 코로나-19는 전 세계를 패닉에 빠뜨렸다. 지구촌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공포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2021년 1월 4일 현재, 전 세계 감염자 수가 8천5백만 명이 넘었고 사망자만도 184만 명을 넘었으니 틀린 말은 결코 아닌 듯하다.
현대 역사는 전염병의 역사
찻잔 속 태풍 정도이길 바랐지만, 마냥 한 지역이나 한 대륙에서 퍼지는 전염병이나 유행병의 수준을 넘어 코로나-19는 지금 지구촌 전체를 휩쓸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비록 우리의 반복적인 일상적 삶을 바꾸고 크나큰 공포로 다가오고 있지만, 또한 인류 모두로 하여금 지난날을 냉철히 성찰하도록 하는 매개가 되고 있다.
사실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지난날에도 전염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20세기에만 해도 여러 차례에 걸쳐 수백 명에서 수천 명까지 희생자를 발생시킨 사례가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발생한 스페인 독감, 1957년 2월 중국에서 시작되어 홍콩을 거쳐 전 세계로 확산된 아시아 독감, 베트남 전쟁 중이던 1968년 7월 중국 남부에서 발생하여 전 세계로 퍼진 홍콩 독감, 1976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 1981년 미국에서 처음 보고된 에이즈, 나아가 2003년 중국 재래시장에서 시작된 사스, 2012년에 중동에서 발생했고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 전국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메르스가 그 전형이다.
어디 그뿐일까? 여기에 소나 닭, 돼지와 같은 동물을 수억 마리까지 살처분하게 한 전염병까지 더하면, 현대 역사는 가히 전염병의 역사라 할 만하다. 어떻게 보면 전쟁이나 다른 어떤 폭력적 갈등보다 전염병이 인류의 삶을 결정지은 가장 큰 요인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코로나-19를 단순하게 그런 전염병의 연장선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될 듯하다. 단지 공포의 대상으로만 여겨서도 안 된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에만 만족해서는 더욱 안 된다. 왜냐하면 코로나-19는 지금 인류에게 이전과는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것을 마지막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푸시&풀의 조건을 만든 인류
각종 새로운 전염병은 흔히 바이러스가 야생동물이나 가금류를 매개로 인간에게 옮겨져 발생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 이전에 왜 야생동물이나 가금류로부터 전염되었고, 어떻게 해서 그들 매개체가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킬 수 있었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야생동물이 바이러스를 인간에게 매개하게 한 주범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모든 책임을 단지 야생동물의 탓으로 돌리기만 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 주범이 인간이라는 점이다. 끝없는 탐욕을 충족하기 위해 자연을 이용하고 자연에 지나치게 개입한 인간이 그 배후에 있다.
인간은 나날이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며 물질적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그 과정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치명적 바이러스의 종간 전염을 가능하게 하고 그 전염을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조성하였다. 신종 바이러스는 흔히 바이러스의 구조 변경, 즉 돌연변이를 통해 사람으로 넘어오는데, 대부분이 매개 동물이라는 중간 단계를 거치며 변신한다. 인간은 바로 이런 바이러스가 변신하고, 중간 매개체인 야생동물을 무한 접촉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종간 전염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들었다.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그 환경은 무엇인가? 현대의 자본주의적 성장과 소비, 상업주의적 산업 발전, 인간중심주의적 가치관은 무엇을 가져왔는가. 인간의 물질적 삶을 향상시키고 끝없는 탐욕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 준 듯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 인간이 자행한 것, 그 결과는 무엇인가? 산불과 같은 생태계 파괴, 기후변화, 공장형 대규모 축산, 항생제 남용, 야생동물의 상업화 및 음식화, 유전자 변형, 보편화된 세계 여행, 대도시화, 신자유주의적 교역의 증가, 인간의 행위와 절대 무관하지 않은 이런 조건들이 모두 새로운 전염병 발생과 확산 가능성을 높였다.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하고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는 푸시Push&풀Pull 여건을 인간 스스로 조성한 것이다.
전염병의 역습
이번 중국발 코로나-19 역시 푸시&풀 원리가 작동했다. 인간 돈벌이를 위해서 야생에 서식하는 동물을 마구 잡아 재래시장 한편에 가두고 있는 동안 매개체인 야생동물은 다른 포유동물과 접촉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을 것이고, 그 고기를 팔기 위해 도축하는 과정에서는 시장 상인이나 구매자 등 인간과도 접촉했을 것이다. 바로 이런 과정에서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넘어올 수 있는 티켓을 부여잡았다. 인간 스스로 강제적인 푸시&풀 조건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자연 생태계의 미묘한 변화는 미지의 병원균을 잠에서 깨울 수 있다. 대형 재앙은 결코 우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 이전에 수많은 재난과 사건들이 발생하여 대형 재앙의 징후를 나타낸다. 인과의 법칙이다. 전염병의 역습이 바로 그러하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의 『위험사회』에 나오는 말이 생각난다. “글로벌 위험은 운명처럼 우리에게 닥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만든 것, 인간의 손과 머리의 합작품이며, 기술 지식과 경제적 이익 계산의 결합에서 나온다.”
마크 제롬 월터스Mark Jerome Walters는 『자연의 역습, 환경전염병』에서 광우병·에이즈 등을 ‘에코데믹Ecodemic’, 즉 생태병·환경전염병이라고 부르며 이들은 인간의 자연환경 파괴와 자연 교란이 빚어낸 산물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자연 파괴로 생태계 균형이 깨지면서 확산되고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인간의 탐욕 행위 결과 새로운 전염병들은 부메랑 효과로 인간 사회를 역습하고 있다.
상생의 문명을 열려면
문제는 앞으로다. 왜냐하면 코로나-19가 인류의 마지막 전염병은 결코 아닐 듯하기 때문이다. 한때 ‘전염병의 종말’을 선언한 일도 있었으나 그것은 인간의 오만에 지나지 않았다. 20세기 후반 이후 새로운 전염병은 오히려 우후죽순 격으로 발생하였다. 코로나-19는 더 큰 전염병 확산의 전주곡일지 모른다.
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점차 더 초국가적이고 비계급적인, 즉 전 지구적이고, 그 어느 때보다도 급속하게 전파되며, 보다 많은 희생을 가져오고 있다. 인류는 신종 전염병의 재발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그리하여 전염병이라는 보이지 않는 죽임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지금까지만도 수백만 명의 희생을 초래한 코로나-19는 인류 모두에게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방식, 우리의 생각하는 방식, 우리가 당연시하며 받아들이고 있는 가정들을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 답이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 아니다. 인간은 자연에 의존하며 거기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하나의 존재일 뿐이다. 우리가 대처해야 할 것은 미생물 바이러스나 야생동물이 아니라, 탐욕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라는 바이러스가 아닐까?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코로나-19를 둘러싸고 국가, 사회, 계층, 나아가 개인들이 보여 준 추한 민낯을 생생하게 보았다. 거기서 우리는 국가 이기주의, 자본과 정치의 힘의 논리, 배타주의를 목격하였다. 거기 어디에서도 세계는 하나, 지구촌 공동체, 상생이라는 정신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것은 세계가 상극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인류에게 가장 요청되는 것은 상생相生이다. 상생문명, 그 시작은 인간 사회는 물론 천지만물의 조화 회복으로부터가 아닐까? 상생을 향한 의식과 가치관의 대변화, 그리고 그것을 향한 작은 실천에서 상생의 문명은 비로소 열릴 수 있다.
강영한
필자약력 :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졸업(사회학박사). 경북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고, 지금은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다. 최근 10여 년간 주요 연구로 『잃어버린 상제문화를 찾아서』(상생출판, 2010, 공저), 『동방 조선의 천제天祭』(상생출판, 2014), 『전쟁으로 보는 세계정치질서』(상생출판, 2016), 『보천교 다시보다』(상생출판, 2018, 공저), 『이 땅에 온 상제 강증산』(상생출판, 2020, 공저)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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